“취준생 설움, 국회의원이 직접 겪어보라지요”
“취준생 설움, 국회의원이 직접 겪어보라지요”
“제 주변에 멀쩡한 생각을 가진 청년 중에 자유한국당 지지자는 한명도 없다. 지지 이유를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청년들이 좋아할 만한 가치도 콘텐츠도 없다. 전교조한테 잘못 배웠다고 청년 탓만 한다. 한국당이 정치권 밖 평범한 청년의 목소리도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 듣기 거슬리고 거북한 비판하는 청년 목소리도 들으려는 노력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지난 1일 충북 단양의 한 리조트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 현장. 청년정치크루 대표 이동수(29)씨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돌직구’를 날렸다. 자유한국당이 “청년들에게 쓴소리를 듣겠다”고 마련한 자리였다. 청중들은 박수로 화답했지만 일부 자유한국당 관계자들이 발끈했다.
정준길 대변인은 이씨의 비판에 대해 “청년들이 최순실과 정유라에 분노해 자유한국당에 표를 안 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제일 이해 안 가는 게 있다. ‘제2의 정유라’라는 문재인 대통령 아들 문준용씨에 대한 수많은 (특혜취업 의혹) 문제 제기가 있었다. 왜 거기에 분노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정우택 원내대표도 자유한국당이 그동안 청년 일자리를 위한 각종 법안을 발의했다고 설명하면서 “청년들도 법안을 놓고 토론한 뒤 비판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선입견을 갖고 싫어하는 경우도 꽤 많다”며 억울함을 드러냈다.
(관련기사: 한국당, 청년 초청해 ‘쓴소리’ 듣겠다더니…비판 듣자 ‘발끈’)
“황당했죠.”
지난 7일 국회 앞 한 카페에서 만난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당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 현장에서 발끈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반응에 “황당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자신이 마이크를 잡자 수첩에 메모를 준비하는 의원들의 모습에 처음에는 긴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발언이 끝나고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반응을 접하고 “보통의 상식과 괴리가 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씁쓸해했다. “원래 하려던 말이 아니었지만 의원들의 반응에 저도 모르게 ‘한마디 더 하겠다. 부끄러운 줄 아십쇼’라고 해버렸어요.”
이 대표는 당시 사건이 기사로 보도된 뒤 “어린놈이 버릇없다”는 댓글이 달릴까 봐 걱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댓글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이 대표에게 “거긴 뭐하러 갔냐”는 차가운 반응이 대다수였다. 그는 “왜 (한국당이)욕을 먹고 있는지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 의원님들이 먼저 반성부터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지난 1일 단양군 대명리조트에서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를 진행했다.
자유한국당 누리집 갈무리.
당시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 대표의 ‘쓴소리’에 “청년들도 법안을 놓고 토론한 뒤 비판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선입견을 갖고 싫어하는 경우도 꽤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표가 막연한 선입견으로 자유한국당 행사에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지난해 새누리당(한국당) 중앙당과 소속 의원실에서 연이어 인턴을 했다. 주변에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친구들과도 자주 만난다. 그리고 현재 청년정치크루 동료들과 함께 신보라 한국당 의원을 비롯해 송옥주·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정미 정의당 의원 등 여야 4명의 의원들과 ‘취업준비생보호법’(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입법 과정에 직접 뛰어든 이유에 대해 그는 “기존의 정치가 진보·보수 이분법에 갇혀 다양한 청년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흔히 청년문제라고 하면 일자리, 주거, 등록금에만 주목하는데 이것들 말고도 청년들의 고충이나 고민은 너무나 다양해요. 결국 세세한 문제의 해결은 청년들이 직접 나서서 개별 법안과 정책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취준생 울리는 ‘갑질’, 이제 그만
’취업준비생보호법’ 소개. 청년정치크루 누리집(http://policrew.kr)
청년정치크루가 취준생보호법 발의에 나선 것은 자신들과 주변 친구들 모두 취업준비생이기 때문이다. “열정을 가지라 “는 기성세대의 주문에 따라 공모전 준비에 밤새고, 인턴 채용에 수시로 지원하며 스펙 쌓는데 ‘올인’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건 ‘갑질’이나 ‘무시’였다. 공모전을 주관하는 곳은 상은 주지 않고 아이디어만 가져갔다. 갑자기 인턴 채용 합격이 취소돼도 이유를 알 수 없다. 대형 보험사들이 재무설계사 인턴을 모집한다고 해서 가보면 결국 하는 일은 보험영업이다. 그마저도 보험 계약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약속한 돈을 주지 않는다.
이에 청년정치크루는 ‘국회톡톡(http://toktok.io)’의 문을 두드렸다. 정치 스타트업 ‘와글’과 온라인 개발자 조합 ‘빠흐티’,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가 개발한 국회톡톡은 누구나 입법을 제안하고 시민 1000명 이상의 지지를 받으면 참여를 희망하는 의원과 함께 ‘입법팀’을 구성할 수 있는 온라인 시민입법플랫폼이다. (관련기사: ‘국회톡톡’으로 닫힌 국회를 똑!똑!)
이들은 국회톡톡에 올리는 제안서에 다음과 같은 입법 취지를 담았다.
“회사가 현장 평가를 한다는 이유로 영업을 시키고 결국 아무도 채용하지 않아도, 면접 때 ‘인성을 보겠다’며 인신공격성 질문을 해도 취업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견뎌야 합니다. 불합격 통지를 해주지 않아 오매불망 합격 소식을 기다린 경험도, 연봉이 궁금하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하다가 월급날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고 한숨만 쉬었던 경험도 모두 우리 청년 세대가 공유하는 경험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청년들 스스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년정치크루 회원인 김대영(26)씨는 “우리 나잇대에 가장 많이 겪는 문제다 보니까, 확실히 20~30대에서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1000명 이상의 지지를 받은 이들의 법안에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바로 관심을 보였고, 5월초 여야 4명의 의원과 입법팀을 이루게 됐다. 이들이 제안한 ‘취준생보호법’은 △채용과정에서 영업행위 강요 금지 △과도한 실무 평가 기간 제한 △불합격자에 대한 통보 의무화 △채용시 연봉정보 공개 △면접 과정 녹음(인신공격성 질문, 성희롱 등 예방)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청년들이 취업준비생으로 겪는 ‘설움’이 고스란히 담겼다. 20대 국회에서 청년정치크루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은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15건 발의된 상태지만 본격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청년정치크루는 여야 의원들이 의기투합한 만큼 법 개정안의 발의와 통과가 순조롭게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 쌍용차, 세월호로 정치에 관심...“진보·보수 이분법으론 아무것도 해결 안되더라”
대한민국청소년의회 의장 등을 맡는 등 일찍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이 대표는 2015년 여름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를 보다 “정치도 힙합처럼 크루(crew)가 있으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다. 힙합에서 크루는 각자 개인 활동을 하다가 마음이 맞으면 단체로 큰 공연을 열거나 앨범을 만드는 느슨한 모임이다. 이 대표는 각자 취업준비나 직장생활을 하다가 ‘청년’이라는 주제로 모여 청년 정책을 만들어 보는 모임을 구상했다.
실제로 이들은 지지정당이나 이념성향이 각각 다른 11명이 ‘청년 문제’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2015년부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대표는 “11명이 지지하는 정당은 6개(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녹색당)로 다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대표와 같이 만난 청년정치크루 회원인 강성찬(28)씨, 박겸송(27), 김대영(26)씨는 정치에 관심을 가진 계기나 지지정당이 다 달랐다.
청년정치크루 (왼쪽부터) 강성찬, 이동수 대표, 박겸송, 김대영씨가 지난 7일 국회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승준 기자
성찬씨는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내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떴고, 겸송씨는 생활 정치를 내세웠던 녹색당에 끌려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대영씨는 2009년 쌍용차 사태 당시 경찰이 옥상에서 노동자들을 강경진압하는 장면을 보면서 “한국 사회에서 갈등을 풀어야 하는 정치가 제 기능을 하는 것인지, 지속 가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진 계기와 생각은 다르지만, 이들은 “진보, 보수 프레임으로 갈등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하나도 도움이 안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정치가 50~60대 아저씨들이 정장 입고 앉아서 탁상공론하는 이미지로 굳어갈수록 정치혐오만 커진다“(박겸송), “지지하는 이념이나 정당이 달라도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게 정치”(김대영)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 대표는 정치도 산업 사회의 발전 과정처럼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의 정치는 진보·보수라는 두 가지 정치적 욕구만 대변했는데, 이제는 정치적 욕구가 다양해졌습니다. 정의당과 바른정당이 이번 대선에서 젊은이들 지지를 받은 건 청년유권자들의 니즈(수요)가 그만큼 다양화됐다는 뜻 아닐까요?”
■ 취준생 설움, 의원들도 경험해 보시라
7일 이 대표와 청년정치크루 멤버들은 신보라·송옥주·이용득·이정미 의원실 보좌진과 법안 발의를 준비하기 위한 첫 회의를 가졌다. 이들은 7월 초에 입법 취지를 알리는 공개 행사를 가질 계획이다. 청년정치크루는 이 자리에서 4명의 의원들이 취준생의 입장이 돼 청년들에게 압박면접을 받고, 인·적성검사도 풀어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자고 제안했다. 의원들에게 던질 면접 질문은 온라인으로 공모할 계획이다. 취준생들의 설움을 의원들이 직접 겪어보면서 입법의 필요성을 강조하자는 취지다. 보좌진들은 “아이디어가 좋다”고 맞장구치면서도 “우리 의원이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를 조심스레 보이기도 했다.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청년정치크루와 신보라(자유한국당)·송옥주·이용득(더불어민주당)·이정미(정의당)의원실 보좌진들이
‘취업준비생보호법’ 논의를 위한 첫 회의를 가졌다. 청년정치크루 제공
청년정치크루는 앞으로도 자신들의 문제와 관련된 입법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취준생보호법을 발의하면 2호로 제안할 법안은 ‘취업사기방지법’이다. 외국계 항공사들이 승무원을 채용할 때 한국 학원에서 이를 대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 이 과정에서 수강생들에게 “전원 합격”이라는 과장 광고를 하며 수강료만 챙기는 일들이 빈번하게 벌어지며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착안했다. 이 대표는 “또래 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아픔에 대해 계속 정책으로 해법을 내보려 한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798739.html#csidxe59b09c2444858fad19806f4819e2a1
한겨레, 2017년 6월 14일 14:34
이승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