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와도 살기 좋은 세상
책 <팩트풀니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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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책 표지에 쓰여 있는 문구인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때문에 본능적으로 이 책에 대해 반감을 느꼈다. 첫 번째로 내가 느끼기에는 세상은 전혀 괜찮지 않았고 정치, 사회, 환경, 인권, 질병 등 분야를 막론하고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들이 수두룩하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는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사고관은 매우 위험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그래서 평소에 진정한 문학작품은 세드엔딩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차분히 저자의 말에서부터 마지막 장까지 다양한 수치와 예시를 들어가며 사회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설득하고 있으며 우리가 세상을 잘못 이해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에서 평소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거나 세상이 괜찮다는 사실에 대해 여전히 의심을 가질 것 같아서 이 책에 나와 있는 질문 중 몇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오늘날 세계 모든 저소득 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은 얼마나 될까?
A : 20%
B : 40%
C : 60%
2. 1996년 호랑이, 대왕판다, 검은코뿔소가 모두 멸종위기종에 등록되었다. 이 셋 중 몇 종이 오늘날 더 위급한 단계의 멸종위기종이 되었을까?
A : 2종
B : 1종
C : 없다
3. 세계 인구 중 어떤 식으로든 전기를 공급받는 비율은 몇 퍼센트일까?
A : 20%
B : 50%
C : 80%
정답은 순서대로 C, C, C이다. 이 문제의 정답을 모두 맞힌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위에 나온 문제 중에서 정답을 맞힌 문제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 책에서 소개하길 이런 사실 확인 문제를 각 나라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하였을 때의 정답률은 33%(작가는 이 비율이 침팬지가 정답을 맞출 확률이라고 한다)를 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이유를 이 책에서 소개하는 10가지 본능과 초중고교에서 배운 지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남은 인생을 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초중고교에서 배운 지식은 그 당시에는 최신의 정보이고 지식일 수 있으나 학교를 졸업하고 10년, 20년이 지나면 더 이상 쓸모없는 지식과 잘못된 지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꾸준히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습득해야 올바르게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극적인 것만 존재하는 곳으로 잘못 이해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된 이유에는 매번 새롭고 비극적이거나 자극적인 사건을 선별해 보도하는 언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이 이렇게 되게 한 것은 언론 스스로가 아니라 뉴스를 보고 소비하는 우리일 가능성이 더 높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일 때 필터링을 하기 마련인데, 이때에 우리의 필터를 통과하는 정보들은 극적인 것들을 담은 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사는 자연스레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정보보다 독자들의 필터링을 통과할 수 있는 극적인 정보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언론사의 선별적 보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비판적 사고와 함께 선택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다 보니 이 책을 읽다가도 문득 코로나19에 대해서도 언론은 우리의 필터링을 거치기 위해 자극적인 언론 보도만을 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되었다. 그래서 실제로 이 책의 저자가 본능을 피하고자 알려준 방법인 ‘수를 비교해 보는 것’을 직접 해 보기로 하였다. 비교하려는 케이스는 지금까지 WHO가 팬더믹 선언을 한 질병인 홍콩독감(1968), 신종플루(2009), 코로나19(2019)이다. 먼저 홍콩독감의 확진자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1억 명 정도로 예상하고 1968년에 세계적인 유행 이후에 2015년까지의 사망자는 100만 명 정도이다. 2009년에 유행한 신종플루 감염자는 대략 600만 명 정도이고 사망자는 18,449명이다. 코로나19는 4월 25일 기준으로 전 세계 감염자는 200만 명 정도이고 사망자는 19만 명 정도이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비교를 해 보았을 때 처음으로 판데믹 선언을 한 질병 이후로 극적인 수준으로 감염자 수가 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두 번째 팬더믹 선언을 한 신종플루보다 많지만 그런데도 감염자 수는 꾸준히 줄고 있는 통계를 보면서 세계보건 시스템이 꾸준하게 발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때에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를 보도한 기사를 볼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결국에 언론은 이처럼 점진적이고 긍정적인 사실보다 사람들이 공포를 느낄 만한 주제에 더 관심을 가지고 보도하고 있었고 우리는 이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가면서 세상에 긍정적인 발전을 찾을 수 없고 세상이 점점 나빠져만 간다고 오해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세상이 점점 발전해 나가고 긍정적인 요소가 늘어난다고 해서 나의 행복은 그와 정비례한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보다 질병에 걸릴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살고 있는 나이지만 오늘날에는 질병 대신 매일매일 해야 하는 과제와 공부, 몇 주, 몇 달 뒤에 있는 시험에 불안해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보다 행복해야 할 요인은 늘었지만, 과거에 비해 자살률이 증가한 아이러니는 이것이 비단 개인적인 감상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뒷받침해 준다. 세상이 발전해 아무리 안전해지고 풍요로워져도 우리가 행복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사회만큼 우리의 행복이 가파르게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좋아진 세상을 누릴 여유나 자유가 없어서일 수도 있겠고 현재 우리 목적에 행복 대신 엉뚱한 것이 놓여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