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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와 무기력에 입을 다문 자들

<82년생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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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결 비평단 Posted17-11-30 22:08 Comments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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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ㅍㅍㅅㅅ, 유재민 기자>

 

 <82년생 김지영>은 논픽션이다. 1982년생 김지영의 출생부터 현재까지를 일말의 과장도 없이 묘사한 이 작품은 대한민국 여성들의 삶의 완벽한 재현이다. 사실적이면서 담담한 어투, 종종 등장해 사실성을 더해주는 통계수치, 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는 소설이 아닌 한 사건의 진술서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1982, 아들 귀한 집의 둘째 딸로 태어나 김지영은 아들만 '자식'인 할머니에 의해 '아무'것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자란다. 시대가 변해도 김지영이 겪는 현실은 여전하다. 대학 MT에 가서는 '먹다 버린 껌' 취급을 당했고, 취업 과정은 남자 동기들보다 험난했다. 결혼 후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 두고 나서는 경력단절에 대한 좌절감을 느낀다. 이는 대한민국 여성 대부분이 공유하는 경험이다.

 

 김지영은 생각보다 현실에 크게 저항하지 않는다. 그를 '먹다 버린 껌'이라 부른 선배, 빨리 아이를 낳으라고 재촉하는 시댁, 임신하면 1시간 늦게 출근해도 되니 좋겠다는 남자동료들 앞에서 오히려 입을 닫고, 뱉고 싶은 말을 목 뒤로 삼킨다.

 

선배는 평소와 똑같이 다정하고 차분히 물었다. 껌이 무슨 잠을 자겠어요,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김지영 씨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82년생 김지영 94쪽, 조남주)

 

주량을 넘어섰다고, 귀갓길이 위험하다고, 이제 그만 마시겠다고 해도 여기 이렇게 남자가 많은데 뭐가 걱정이냐고 반문했다. 니들이 제일 걱정이거든. 김지영 씨는 대답을 속으로 삼키며 눈치껏 빈 컵과 냉면 그릇에 술을 쏟아 버렸다.(82년생 김지영 116쪽, 조남주)

 

그럼 너도 계속 구역질하고, 제대로 먹지도 싸지도 못하면서, 피곤하고, 졸립고, 여기저기 아픈 상태로 지내든지. 겉으로 말하지는 못했다.(82년생 김지영 138쪽, 조남주)

 

 김지영이 분명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뛰어난 장사 수완으로 집안을 먹여 살린 어머니부터 여자라고 무시 당하는 것이 싫어 더욱 악착같이 일했던 김은실 팀장까지, 김지영은 주변 여성들이 살아온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고,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김지영은 그녀가 목소리를 낼 수록 상황은 더욱 안 좋아져만 감을 느낀다. 임신해서 '' 빤다고 조롱하는 남자 동료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늦게 출근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을 곧 후회한다. 스스로도 너무 힘들었을 뿐 아니라 후배들의 권리까지 빼앗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육아를 위해 끝내 직장을 그만 둔 김지영을 위로한답시고 열심히 돕겠다는 남편에겐 "그 놈의 돕는다는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김지영은 이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말을 해도 상황은 그대로이거나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김지영은 목소리를 점점 잃어갔다.

 

 김지영은 이제 말을 하기보단 속에 담아두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을 안다. 벽에 대고 소리를 쳐봐도 돌아오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안다. 노력은 피로와 무기력, 그리고 더 큰 화로 이어진다. 내 주변에서 많은 여학생들이 목소리를 잃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누구보다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이 성차별적임을 잘 안다. 그래도 그들이 "화장이 그렇게 진해서 술집 여자 말고 뭐가 되겠냐"라고 말하는 교사와 싸우지 않는 것은 목소리를 내도 변하는 것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들은 입을 다물고, 싸우길 거부한다.

 

 결국 김지영은 마치 타인이 된 것처럼 말하는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녀의 증상에 대해 여성학자 김고연주는 이렇게 설명한다

 

"김지영의 증상은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하지만 여성 혐오 사회에서 목소리를 잃어버린 김지영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바로 목소리를 잃어버린 김지영을 위한 여성들의 연대 행위다. 이 여성들은 김지영을 대신해 말하고 있다."(본문 186)

 

 자신의 어머니가 된 김지영은 용감하게 시부모에게 "그 집만 가족인가요? 저희도 가족이에요"라며 친정으로 가겠다고 한다. 남편 정대현의 첫사랑, 차승연이 되었을 때는 고생하는 김지영을 잘 챙기라며 남편을 나무란다. 김지영이 할 수 없는, 속에 묻어버린 이야기들을 다른 여성들이 대신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김지영은 회복 될 수 있을까? 아니, 회복되어야 할까? 목소리를 잃어버린 채 아무 말도 못하느니, 남의 목소리라도 빌려 말하는 편이 김지영에겐 좋아 보인다. 소설의 마지막 장은 암묵적으로 김지영이 회복 되어서는 안됨을 드러낸다.

 

 김지영이 이상증세를 보인 이후, 그녀를 상담한 정신과 의사는 전도유망한 의사인 자신의 아내가 육아 때문에 일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며 대한민국 여성의 현실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특별한 경험이나 계기'가 없는 '평범한 40대 남자'이었으면 그러한 현실을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라며 일종의 자부심마저 내비친다.

 

 그러나 그의 공감과 성찰은 너무나도 쉽게 끝나버린다. 임신 후 몇 번의 유산 위기를 거치며 끝내 일을 그만두는 상담사를 보내며 그는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가지로 곤란한 법"이라며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고" 말한다. 결국 자신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어머니와 아내가 여성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이유이기에, 남자들에게 여전히 여성은 헌신과 희생, 돌봄의 원형으로 존재 할 때 적대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의사에게 헌신만 아내만이 위로 받아 마땅한 '여성'인 것이다.

 

 사실 그 짧은 공감에서마저도 나는 찝찝함을 떨치지 못했다. 그의 말에는 여성의 고통을 인지하는 것과 함께 자신의 안전과 특권이 보장되어 있다는 안도감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의사는 그가  '억압'을 안다고 자신한다. 뛰어난 능력의 아내가 육아 때문에 일을 포기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고, 그래서 그는 자신을 '평범한 남자들' 위에 둔다. 그러나 가장 큰 모순은, 그는 눈에 보이는 성차별을 해결하기 위해선 일말의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담사를 떠나 보내며 그녀가 커피를 센스 있게 잘 타주었던 것만을 회상하고,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는, 김지영이 겪는 현실이자 우리가 넘어야 할 장벽이다.

 

 만약 김지영이, 의사의 아내가 육아를 포기하고 회사원으로서, 의사로서의 길을 계속 걸었다면 전혀 다른 <82년생 김지영>이 쓰일 수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믿는다.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김지영을 '맘충'이라 부른 이들도, 아이 계획에 끊임없이 참견하는 시부모도, 임신으로 일을 그만두는 상담사를 보며 다음에는 미혼 후임을 뽑을 것을 계획하는 정신과 의사도, 모두 어딘가에서 장벽을 만들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지영이 어떤 길을 가기를 응원해줘야 하는 것일까? 내가 '82년생 김지영'의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자료 출처

_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저, 민음사 

 

사진 출처

_

<ㅍㅍㅅㅅ>'82년생 남자'가 몰랐던 '82년생 김지영'의 삶

http://ppss.kr/archives/110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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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출처]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저, 민음사
[사진출처]
<ㅍㅍㅅㅅ>'82년생 남자'가 몰랐던 '82년생 김지영'의 삶
http://ppss.kr/archives/110996
전자매체 이은결 비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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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다혜님의 댓글

윤다혜

'82년생 김지영' 이라는 책을 참 감명깊게 읽어 비평을 작성했었는데 새로운 비평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색다른 느낌이 듭니다. 우리가 현실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말이 매우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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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빈님의 댓글

최혜빈

82년생 김지영은 정말 저도 공감하고 많은 것들을 느끼며 읽은 책입니다. 책이 논픽션이라는 말이 확 와닿는 문장이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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