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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 디아스포라, 고구려 유민 : 그 많던 망국의 유민은 어디로 갔을까

<1,300년 디아스포라, 고구려 유민>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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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원 비평단 Posted19-09-07 23:47 Comments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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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개토태왕의 개마 무사들과 기마병은 한때 만주를 호령했고, 을지문덕의 군사들은 침략해온 수 양제의 대군을 차가운 살수 물에 수장시켜 버렸다. 곡식이 익는 가을의 10월이면, 그들은 어김없이 동맹(同盟)’이란 이름의 축제를 벌였다. 동쪽의 동굴에서 그들의 선조 버드나무 어머니 유화와 태양신 해모수를 모셔 와 성대한 제사를 지냈으며, 궁고와 주름치마를 차려입고 깃털과 은으로 온몸을 장식한 남녀가 한데 어우러져 흥겨운 춤사위를 벌였다.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고 바람이 불어오면, 어김없이 그들의 땅에는 삼족오 깃발이 나부꼈다. 서기전 1세기부터 668년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약 700년간 이 땅에 존재했던 나라, 고구려의 찬연한 영광의 순간들이었다. 고구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고구려의 영광의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그 강성했던 나라 고구려가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퇴장하던 비탄의 순간까지도 기억하고 있는가?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은 당나라로 끌려가 그곳에서 생을 마쳤으며, 나라를 잃은 백성들은 귀족과 호민, 하호와 노비의 신분에 관계없이 떠돌이 유민이 되었다. 일부는 중국 본토로 끌려갔으며, 일부는 신라와 발해인이 되었고 일부는 나라를 잃은 채 정처 없이 떠돌다 죽음을 맞았다. 아마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를 본 적이 있다면, 극중에서 스쳐 지나가듯 언급된 고구려 유민들을 한 번쯤 초록창에 검색해 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무주국에 투항해 무주국 변방 영주성의 무장이 된 귀족 출신 고청명(이도현 분)과 가오리촌 떠돌이 도적패의 일원인 장만월(이지은 분), 연우(이태선 분) 등은 모두 고구려 유민이었다. 나라를 잃은 고구려 유민들의 삶은 드라마 속 세 사람의 마지막처럼 비참했다. 선조의 터전인 팔레스타인을 떠나 뿔뿔이 흩어진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 민족이 있었다면, 1,300년 전의 이 땅에는 나라를 잃고 떠돌던 최초의 코리안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 고구려 유민들이 있었다. 그러나 비록 1300년 전 고구려 개마 무사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렸던 만주 벌판이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게 되었고, 그 유산과 영광의 파편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져 예전의 자취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지라도. 고구려는 멸망했으나, 고구려인의 핏줄은 멸망하지 않고 1,300여년의 시간을 숨죽여 살아왔음을 믿는다. 고구려와 고구려인의 흔적은 뜻밖에도 중국 남방의 소수민족인 먀오족(苗族, 묘족)의 마을에서 발견되었다. 책의 저자인 김인희 박사는 2000년 국제학술대회 도중 들른 먀오족 마을의 남자들이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형태의 고구려 바지 궁고를 입고 생활하는 장면을 목격한 이래 2010년까지 10년간 쭉 먀오족과 고구려 유민 간의 상관관계를 쫓아 왔다. 먀오족의 역사와 중국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그들만의 풍습은 고구려의 것과 연관짓지 않고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 책은, 열아홉 가지 이유를 들어 먀오족이 당으로 끌려간 20만 고구려 유민들의 후손임을 입증하고 있다. 나는 오늘 이 글을 통해 그 중 몇 가지를 적어 보고자 한다.

 

첫째, 먀오족 고유의 복식에는 고구려의 흔적이 남아 있다.

흰바지야오족은 광시성의 난단현과 구이저우성의 리보에 거주하고 있는 인구 3만명 정도의 민족이다. 그들은 본디 먀오족과 동일한 계통의 북방 민족이나, 중국 정부의 정책 일환으로 인해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남방계 소수 민족 야오족에 편입되어 야오족으로 불린다. 그들이 흰바지야오족으로 불리우는 이유는, 매우 단순히 그들이 항상 독특한 형태의 흰 바지를 입고 생활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쪼우라고 부르는 이 바지는 가랑이에 삼각형 모양의 큰 바대를 대어 엉덩이가 풍성해 보이고, 발목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중국 어디에도 없는 매우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중국 내 다른 민족은 이러한 형태의 바지를 입은 적이 없다. 중국 한족의 가장 오래된 바지 형태인 개당고는 가랑이 부분이 트여 있어 대소변 배출이 용이하도록 만든 것으로, 쪼우와 같은 바대 부분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개당고가 발달한 형태인 송 왕조 대의 합당고는 두 개의 바지통을 중간에서 연결해 재봉한 것으로 천 한 장만을 이용해 재봉한 쪼우와는 그 형태부터 다르다. 흰바지야오족의 독특한 바지 쪼우, 고구려인의 바지 궁고와 상당히 흡사한 형태이다. 엉덩이가 튀어나오도록 만든 큰 바대가 가장 큰 특징이며, 펑퍼짐한 엉덩이, 좁은 무릅, 많은 잔주름 같은 특징은 여러 고구려 벽화에서 보여지는 모습과 거의 유사하다. 다른 마오족 혈통인 훙터우야오족, 바자이먀오족 역시 동일한 형태의 바지를 입고 생활하고 있다. 쪼우와 같은 형태의 바지는 흉노와 고구려 민족 같은 북방의 기마 민족이 입던 것으로, 말을 타며 장시간 이동할 일이 드문 중국의 남방에서 발견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흉노족은 1세기경 멸망한 이후 북방에 남거나 서쪽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흉노족 바지와 흰바지야오족의 쪼우를 연관지을 수 있는 역사적 근거가 없다. 오히려 20만의 고구려 유민은 대부분 중국 남방으로 끌려갔기 때문에, 이들 중 10만 정도가 한족에 동화되지 않고 산악 지대에 숨어들어 먀오족을 형성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먀오족의 복식에 남은 고구려인의 흔적은 몇 가지 더 있다. 그들의 옷에 수놓인 강과 도성 지도, 여인들의 주름치마와 깃털로 장식된 모자 절풍, 금은 장신구와 새날개형 관식  등이다. 광시성의 먀오족, 구이저우 중부의 먀오족, 샤오화먀오, 다화먀오, 후난 먀오족 등의 먀오족들은 여자들의 치마에 두 개 또는 세 개의 강을 수놓는다. 흩어져 살고 있는 이들 대부분은 한 목소리로 이 강들의 의미에 대하여 이는 탁한 강과 푸른 강으로, 추운 북방에 살던 그들의 선조들이 이주해 올 때 건넜던 강이라고 주장한다. 만주 일대에 살던 고구려인들 역시 이주 과정에서 탁한 강 황하와 푸른 강 창강을 건너야 했다. , 샤오화먀오와 바이먀오, 다화먀오, 흰바지야오 등은 복식에 독특한 사방형의 도안으로 문양을 만들어 지니고 다닌다. 이들은 이 도안의 기원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선조들이 전쟁에서 패배한 후 산 위에 서서 도성을 바라보니 매우 마음이 아팠다. 후에 계속 산속에 숨어 있을 수 없어 도망을 치기로 했다. 도성을 갖고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먀오족의 부녀자들은 이 도성을 옷에 새겼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고구려의 도성은 대체로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외성과 내성을 갖춘 사방형의 모습으로, 먀오족의 옷 랑차오에 새겨진 도형 문양은 사각형 모양이며 외성과 내성까지도 갖추고 있어 고구려의 도성과 대체로 비슷해 보인다. 랑차오의 도성 도안과 성가퀴, 망루, 도로를 상징하는 많은 문양들은 어쩌면 그들이 고구려 땅에 있을 때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바로 그 도성일지도 모른다. 비록 현재의 그들은 고구려를 잊었지만, 조상의 옷에 남은 흔적들은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둘째, 한국인과 화란야오족은 가장 가까운 민족이다.

 중국 학자 페이샤오퉁은 한국인과 먀오족 중 하나인 화란야오족이 체질인류학적으로 매우 흡사하다는 주장을 폈다. 화란야오족은 야오족으로 분리되나 이 또한 중국 정부의 정책에 의한 것이며, 그들은 먀오족 언어를 사용하는 먀오족이다. 페이샤오퉁은 1935년 화란야오 마을을 방문해 체질인류학적 조사를 했는데 이들의 특성은 당시의 조선인과 매우 가까웠다. 갓 결혼한 상태였던 페이샤오퉁과 왕퉁후이는 함께 화란야오족 마을로 답사를 떠났다, 그 과정에서 사고로 인해 왕퉁후이는 사망했고 페이샤오퉁은 큰 부상을 입은 후 조사 자료를 잃어버렸다. 페이샤오퉁의 조선인 인체측량 자료는 러시아의 스승인 쉬로코고로프가 500명의 조선인을 대상으로 수집한 것으로, 페이샤오퉁은 비교 분석을 통해 키가 평균 160cm에서 150cm사이이며, 두형 지수가 80좌우이고 길고 둥근 이마와 곧게 뻗지 않은 베타유형의 체질인류학적 특성을 가진 화란야오족과 조선인이 아주 가까운 민족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 민족 사이의 연결고리는 망국 후 중국 남방으로 끌려간 고구려 유민뿐이다.

 

-고구려와 먀오족은 다수의 고유 풍습을 공유한다.    

고구려의 것과 닮은 먀오족의 풍습은 무척 많아서, 모두 나열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그 예로 형사취수 풍습과 서옥제, 축제인 10월의 동맹과 장례법 등이 있다. 형사취수 풍습은 한족은 가지고 있지 않던 것으로, 매우 독특하게 여겼기 때문에 기록에도 남아 있다. 먀오족의 형사취수 풍습은 현 세대에는 거의 사라졌지만 이전 세대까지 매우 보편적이었으며, 고구려인들처럼 아내의 집에서 혼례를 홀린 후 장기간 아내의 집에서 함께 거주한다. ,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는 매 해 음력 10월에 축제인 동맹을 거행했다. 먀오족 역시 10월에 고사절 축제를 거행한다. 고구려의 동맹과 먀오족의 고사절에는 동쪽의 동굴에서 을 모셔오는 독특한 의식을 치른다는 공통점이 있다. 북을 모셔 오는 고구려의 의식은 고대 부여에서 기원한 것으로, 중국의 어떤 민족에게서도 이러한 의식이 발견된 적 없다. 장례법 역시 흡사하다. 고구려인들은 가족이 죽었을 때 시신을 집 안에 가매장한 후, 3년 후 겨울에 길일을 택하여 장례식을 거행하고 집 밖에 다시 매장했다. 흰바지야오족의 장례법 역시 같다. 흰바지야오족은 아주 추운 곳, 사계절 눈이 내리고 녹지 않는 곳을 지나야 조상이 살던 곳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구이저우 서북의 먀오족들 역시 자신들의 조상이 사계절 눈이 내리는 곳에서 이주해 왔고 죽음 이후에는 그곳으로 가 조상을 만난다고 한다. 추숑의 먀오족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그곳은 즈거루라고 부른다.

 

즈거루까지 길을 닦았다.

지금 즈거루 성문에 도착하려 한다.

너는 너의 조상의 옷자락을 잡고 가라.

그들은 너에게 즈거루의 가시문을 열어 줄 것이고

그들은 즈거루의 은문을 열어 줄 것이다.

너는 지금 조상을 따라서 가라.

너희와 함께 온 세 무리의 손님은 돌아갈 것이다.

망자여!

안심하고 가시게.

 

구이저우 동남쪽의 먀오족들이 부르는 상엿소리, 분건곡(焚巾曲)이다.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을 고향으로 하는 그들은 서쪽으로 이동해 왔다. 따라서 그들은 영혼을 조상이 살던 곳을 향해, 동쪽으로 보낸다. 해가 뜨는 곳에 삼족오 깃발이 나부끼던 고구려의 도성이 있다.

 

해가 뜨는 언덕에 접근하는데

해가 뜨는 언덕에 머무르지 마라.

머물면 갈증을 느끼게 될 것이고

갈증으로 죽을 수도 있다.

 

해가 뜨는 언덕을 지나

동방의 끝으로 가면

조상이 사는 곳이 가까워지는데

조상의 땅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1,300년 동안 잊지 못한 땅이다. 죽어서도 차마 꿈엔들 잊지 못해, 돌아가기를 바라며 노래를 지어 후손들로 하여금 부르게 한 땅이다.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 땅에, 그들은 죽어서 영혼으로나마 돌아가게 되었다. 사내는 궁고를 입고 절풍을 쓰고, 바람이 부는 드넓은 만주 벌판을 말을 타고 달릴 것이며, 여인은 주름치마를 입고 새 날개 모양의 은 장식으로 치장한 채 흥겨운 동맹의 춤사위를 즐길 것이다. 그들의 선조인 수신 하백과 버드나무 어머니 유화, 태양신 해모수가 그들의 터전을 보호할 것이다. 노래는 계속 이어진다.

 

조상의 집에 도착해

조상의 치마를 잡고

조상의 옷자락을 잡고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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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 디아스포라, 고구려 유민(김인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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