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미디어비평        인쇄매체

안중근, 그는 누구인가

사상과 목적

페이지 정보

By 조유정 비평단 Posted19-05-18 21:03 Comments3건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클립보드 복사

본문

안중근 의사의 대한 존경을 어찌 글로서 모두 표현할 수 있겠는가?

단순한 지식으로 역사적 인물인 안중근 의사를 표현한다는 것은 그분에 대한

예의를 벗어나는 것 같아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안중근의사의 업적을 찾기 위해 도서관 서고에 꽂혀있는 그의 관련된 많은 책을 뒤졌다.

그중 안중근 평론동양 평화론은 가슴에 뜨겁게 다가왔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게 아니라 그의 사상과 삶까지 이해하려고 하다 보니 시간도 많이 걸렸다.

조선은 역사적으로 가슴 아픈 사건이 많은 나라였다. 조선 전기까지 평화롭게 살던 우리 민족은 외부 나라의 힘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렇지만 힘들수록 서로 도움을 주고받던 작은 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평가했다.

조선이 세계의 싸움에 휘말리게 된 이유는 나라 간의 권력 욕심이었다. 더 넓은 땅을 소유하며 많은 부를 축적하고 싶었던 나라들은 전쟁을 시작했다.

학교수업으로는 아픈 역사를 이해하기에 충분치 못했다. 관심 있는 학생들만 책을 찾아서 공부했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떤 인물이 있었고, 덕분에 나라를 지켰다라고 하는 인과관계만 배우게 될 뿐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 나라에 있던 사람들을 세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한국을 식민지화 시키려던 일본인이 있다. 그들은 어떤 졸렬한 방법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지금까지도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고 있다. 두 번째 분류인 친일파는 자신의 앞가림만 생각하여 민족을 외면하였다. 이 사람들은 나라에 도움은커녕 대한제국의 주권을 팔아넘기기 까지 했다. 몇 십 년을 호화롭게 살고자 했던 생각 때문에 아마 몇 백 년 동안 후손들에게 소개 될 사람들이다. 마지막은 일본군과 친일파에 맞서며 대한 독립을 외치던 사람들이다. 짧게는 물건을 기부하며 조용히 돕고, 크게는 중국에 나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안중근은 197938선 부근에서 위치한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수양산 아래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안중근은 가슴과 배에 7개의 점이 있어 응칠이라는 자가 붙여졌다.

당시 재판을 받는 안중근의 모습이 떠올랐다. 많은 일본인 앞에서 소신을 말하는 당당한 모습을 봤던 일본 순사들은 그에게 물었다. 이토를 사살한 후에 도망 갈 생각을 하였냐고 말이다. 안중근은 일본 순사를 꾸짖으며 다시 말했다. 동양의 평화를 위협하던 이토를 저격한 것은 조국을 위해 당연한 일, 거기서 코리아 우레를 말하며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고 말이다.

 

초등학교 때 안중근을 소재로 한 누가 죄인인가라는 뮤지컬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안중근에 대한 내용은 모르고 가사를 외우기엔 급급했다. 시해는 무엇이고 늑약과 조약은 뭐가 다른지 헷갈렸다. 처음에는 안중근의 역을 맡은 배우의 표정만 따라하게 되었는데, 그땐 내가 정말 비통하고 나라를 뺐긴 아픔을 이해하긴 어려움이 있었다.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강렬하게 말을 하였던 기억이 난다. 특히 안중근 혼자 했던 말이라 더 기억에 남는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그 신념을 숭고하며 긍정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종교를 믿으며 살아간다면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종교적 신념을 시대에 맞게 변화시키려는 안중근과 보수적으로 생각하는 주교와 가치 논쟁을 벌이게 된다. 안중근은 천주교를 바탕으로 한 학교를 세우자고 했다. 인재양성을 중요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교는 신념에 어긋난다며 이를 거부했고 결국 두 사이는 좋지 않게 끝난다. 안중근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삼흥학교를 세웠고 이후 오학교라는 학교로 변화하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나라를 위해 힘썼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상점 까지 팔아가며 인재를 양성했다는 점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평화주의자인 안중근은 이토를 사살하기 위해 총을 들었다. 평화주의자이면서 신앙인인데 어떻게 그런 결단을 했는지 의아해 할 수도 있다. 안중근은 한 사람이 아닌 국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총알 세 발은 적중했으며 계획은 성공이었다.

 

대한제국이 일본을 도와줬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 내용이 일본의 야욕에 따른거짓임을 알게 되어 더욱 황당하였다.

일본은 서양이 동양에게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조선은 우리와 함께 힘을 합쳐서 이겨 내보자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조선 사람들은 일본의 말에 믿음을 가졌다. 전쟁이 마무리 될 때쯤 일본은 본심을 들어냈다.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싶었던 일본의 야욕이 숨어있었다. 일본의 말의 부당함을 말한 이 책의 제목은 동양 평화론이다. 일본 순사들은 이 책이 마무리 될 때까지는 기다려 주겠다고 말했지만 약속을 어겼다. 안중근의 철학이 담겨 있던 소중한 책이 미완성으로 남아 아쉬움이 컸다.

 

미 완성된 동양 평화론의 내용은 이랬다. 일본과 청, 한국의 대표가 세계평화회의를 조직한다. 이의 재정은 회원의 회비로 확보하는데 3국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화폐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동양이 화합하여 군대를 만들고 서로의 언어를 2개 국어 이상 배우는 것, 그것이 안중근의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3국의 자주독립을 전제로 했던 생각들이었다. 한국, 일본, 청이 모두 주권을 가지고 화합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동양 평화론의 세계관은 약육강식이다. 세계의 나라들이 서로 경쟁을 하며 침략하고 목숨을 위협하는 과정을 봐왔다. 그렇지만 동양은 처음부터 전쟁과 침략에 관여하지 않았다. 자신의 나라만 지키면서 살아왔다고 말했다. 러일전쟁을 겪으며 동양은 큰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 일왕은 조선에게 이야기 했다. 일본은 동양을 지키고자 싸우는 것이며 동양은 이를 도와야한다고 말이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은 한국에게 계속 간섭을 해왔다. 안중근은 이 점을 비판하면서 일본의 정치는 조선을 속였다고 말했다.

 

동양 평화론의 뛰어난 점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로, 유럽연합인 EU의 체제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의 유럽중앙은행설립, 서유럽연맹 군사정책, EU조약 개정 승인권은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의 내용과 흡사하다. 또한 동양 평화론과 칸트의 영구 평화론을 비교할 때 대단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칸트가 영구 평화론을 저술하고 100년이 지난 후, 동양 평화론이 등장했다. 영구 평화론은 국가들이 각자 권리를 가지며 평화를 유지해야한다는 입장을 가진다. 구체적인 방법보다는 관념과 사상으로 접근하여 평화가 어떤지 말해준다. 이 역시 동양 평화론과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에서 안중근의 사상을 연구하는 미키노 에이지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교육을 통해 도덕적인 인품을 가지게 하며, 절대 무력으로는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이 유사하다고 말이다. 또한 평화를 머리가 아닌 성취해야 한다고 한 점도 같았다.

 

안중근을 이야기 할 때 어머니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나온다. 바로 편지 한 통 때문이다. 우리가 초콜릿을 주고 받던 현재의 214, 이 날은 안중근 의사의 사형 선고일이다. 그 주만 되면 마트에는 초콜릿 세트들이 메인 한 칸을 채운다. 단순한 기념일인 이 날은 안중근의사의 사형선고를 잊게 만들었다. 불과 몇 십 년 전인 1910214. 사형이라는 무거운 선고를 받게 된다.

그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도 면회를 오려고 했다. 그러나 차마 얼굴을 볼 수 없어서인지 편지 한 통만 남겨주고 갔다. 이 마지막 편지가 안중근에게는 위안이 되었으며, 의지를 꿋꿋하게 만들어 주었다.

너의 죽음은 너의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엄마께 물었다. 내가 만약 안중근이었으면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엄마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형집행은 내 잘못이 아니라 일본의 잘못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다시 항소를 하며 어떻게 해서라도 도움을 줄 거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던, 잘못된 방법은 없다. 훌륭한 아들을 둔 어머니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안중근 의사의 포부는 대한 독립이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일본의 부당함을 설명하고자 애썼다. 그 결과 세계 사람들은 일본의 횡포를 알게 되었다. 현재까지도 한국은 물론, 세계까지 안중근의 정신을 존경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 전 날 하신 말이 너무 기억에 남았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 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국권은 회복된 지 오래이다. 현재는 어엿한 주권을 가지고 자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어느 나라를 가도 한국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안중근의 고국은 대한제국이요, 즉 지금의 한국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의 유골은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한평생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지만 정작 후손들은 마지막 소원을 이뤄 드릴 수 없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일본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은폐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 안중근의 사상이 알려지고, 자신들의 잘못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무덤도 아닌 자신들만 아는 장소에 묻었다. 현재까지도 안중근의 묘를 찾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안중근은 한국에 없지만 후손들은 그를 기리고자 추모 공원을 세웠다. 역사책에 그를 실어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교육하고 계속 존경심을 표하고 있다.

안중근이 사형선고를 받은 날, 현재의 일본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때 막 성인이 된 대학생 분이 안중근의 손이 그려진 옷을 입고 일본의 시내를 걸었다. 당당하게 역사를 꾸짖을 수 있던 그 분께 감사한다. 학교의 선배들도 그런 옷을 입었던 적이 있으나 단순히 옷이 특이하고 세련되었다고만 생각했다.

 

옷에 새겨진 디자인을 자세히 보노라면 손가락 문양이 역사적인 사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 입고 다니며 독립 운동가를 존경했던 선배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우리 생활에서도 이렇게 안중근의사를 생각한다는 점이 많이 와 닿았다. 안중근 의사가 지금 한국을 보고 뿌듯해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훌륭한 후손 일 것이다.

 

안중근은 완성된 사람이었다. 어쩌면 대한독립을 위해 태어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만큼 나라를 사랑했다. 그가 하던 일이 그가 한국에 남겼던 발자취와 계속 연관이 되어 있었다. 8살부터 무예를 배우고 예의를 배웠다. 천주교를 믿으며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확실히 판단할 수 있었다.

7살 때 바위에 있는 꽃을 꺾으려다 죽을 뻔한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무조건 이루어야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시작은 작았지만 끝에는 대한 독립이라는 창대한 꿈을 꾸게 된 것이다. 내가 안중근에게 배우고 싶은 것은 의지이다. 이루어야하는 일을 안중근처럼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 같다. 꼭 좋은 결과가 아니더라도 자신에게는 떳떳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배울 점을 찾고, 나아가 좋지 않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자세이다. 기록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해서 제대로 알아가지 않으면 또 그 실수를 반복 하게 된다고 말한다. 3주 동안에 걸쳐 이 글을 쓰며 많은 감동을 받았다. 또한 안중근의 사상과 애국정신을 느꼈다.

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100주년이다. 안중근을 포함한 많은 독립 운동가들의 도움으로 이렇게 주권을 가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지게 되었다.

길어 보이지만 우리나라 역사 반만년을 봤을 때 100년은 별로 지나지 않는 시간이다. 그만큼 안중근은 우리와 가까이 함께 하고 있다

 

 

 

 


Copyright ⓒ 대한민국청소년의회(www.youthassembly.or.kr),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출처]
.
[사진출처]
google
인쇄매체 조유정 비평단
E-mail : tean20044@gmail.com
추천 0 반대 0

Comments '3'

사무국님의 댓글

사무국

<댓글 평가 결과>
① 분량 : 적합(1200byte이상) ② 사진/이미지 및 본문 인용 : 적합(출처기재) ③ 내용 : 적합(재구성 및 본인견해)
* 만약 수정하신다면, 이메일로 재평가를 요청해주셔야 합니다.

<주의사항>
"기자단 소통" 게시판에 <2019학년도 2학기 활동매뉴얼> 공지사항을 확인해주세요!
타인의 글을 인용하실때는 저작권법에 위배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6줄 이상 인용시 무통보 삭제)

추천 0 반대 0

안태희님의 댓글

안태희

안중근 의사를 생각하면 막연히 존경스러운 분, 대단하신 분 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안중근 의사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생각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더불어 역사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추천 0 반대 0

김예원님의 댓글

김예원

안중근 의사님.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존경스럽고, 대단하신 분입니다. 나라를 위해 이렇게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분들이 얼마나 계실까요. 우리는 항상 독립운동가 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쪼록 좋은 글 감사합니다.

추천 0 반대 0
게시물 검색
인쇄매체 목록

설문조사

~

활동 지원 상담

1544-8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