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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희빈에 관한 오해와 진실

<인현왕후전 - 작자미상>, <사씨남정기 - 김만중>, <임형주, 장희빈을 부르다 - 임형주>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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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원 비평단 Posted19-05-08 02:26 Comments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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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희빈’, 하면 우리는 대체로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가? 혹자는 화려한 붉은 색 계열의 당의를 차려입고 짙은 화장을 한, 요요한 미색의 젊은 여인을 떠올릴 것이고, 또 누군가는 표독스러운 눈을 치켜 뜬 채 뭬야?’ 하고 소리치며 궁녀의 뺨을 후려치는 악녀의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또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가 내 또래의 학생이라면, 2010년 방영되어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대하 사극 <동이> 에서 장 희빈 역을 맡아 열연했던 배우 이소연이나, 2013년 방영되었던 또 다른 장 희빈을 다룬 사극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배우 김태희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죽은 지 삼백 여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유교적 이념이 깊숙이 뿌리박힌 보수적인 조선 사회를 한바탕 들썩이게 한 초대형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후대에까지 전해지는 그녀의 이름은, 고명보다는 오히려 악명에 가깝다. ‘요부, 악녀, 경국지색, 팜므파탈.’ 역사도, 소설도, TV 드라마나 영화도 모두 그녀를 악녀로, 희대의 요부로 규정한다. 그리하여 그녀를 알아 온 이래 줄곧 인간으로서의 장옥정에 흥미를 품고 있던 나는, 이러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만약 장옥정이 악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의심이 많다. 따라서 과거의 기록으로서의 역사를 백 퍼센트 신뢰하지 않는다. 사료는 항상 승자에 의해 쓰여지며, 역사는 그 사료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성립된다. 승자의 입맛에 맞지 않는 역사는 언제든지 승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되도록 바뀌고, 왜곡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지.” 라는 말을 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치와 향락의 대명사가 되었고, 백제의 의자왕이 삼천 명의 궁녀를 거느린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난봉꾼그 자체가 되어 현재까지 창피를 당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인간 장옥정의 삶을 변호하고자 함이다. 그녀를 아는 이는 많지만 그녀의 편이 어디에도 없다면, 이보다 큰 비애는 있을 수 없지 않을까.

장옥정에 대한 오해를 풀기 앞서, 나는 먼저 그녀의 남편인 숙종에 대한 오해를 풀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잠시 작자 미상의 궁중 소설 인현왕후전, 동시대 인물인 서포 김만중이 쓴 사씨남정기를 보도록 하자. 인현왕후전의 전체적인 내용은, 우리가 아는 인현왕후 장 희빈 대결 구도의 이야기와 매우 흡사하다. 실제로, 숙종 시대를 다룬 많은 드라마나 소설들이 이 책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인현왕후전속의 숙종 임금은, 여인의 치마폭에 싸여 정사를 그르치는 혼군 중의 혼군이다. 악인으로 묘사된 희빈 장 씨와 남인 세력의 뻔하디 뻔한 거짓말에 넘어가 자칫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한’, 정비 인현왕후를 박대하고 궁 밖으로 내치기에 이른다. 서포 김만중의 사씨남정기역시 배경을 중국의 명나라로 하였고, 등장인물의 이름을 숙종 임금에서 한림학사 유연수로, 중전 인현왕후에서 현숙하고 인자한 사 씨 부인으로, 희빈 장 씨를 아름답지만 교활한 첩실 교 씨로 교묘하게 바꾸었을 뿐 전체적인 내용이 매우 흡사하다. 장원 급제를 하고, 어린 나이에 한림학사 벼슬에까지 오르는 등 총명하기 그지없는 유연수는 유독 여자 관계에서만큼은 멍청하고, 우유부단한모습을 보인다. 또 두 소설은 모두 인현왕후와 서인 진영(또는 인현왕후와 서인을 상징하는 진영)을 절대선으로, 희빈 장 씨와 남인 진영(또는 희빈 장 씨와 남인을 상징하는 진영)을 절대악으로 설정하여 어리석고 우유부단한 남자 주인공이 정신을 차림을 통해 선한 이는 복을 받고 악한 이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표본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소설은, 사실과는 꽤나 거리가 있다. 불 같은 성정으로 알려진 숙종 임금이 이 두 소설을 보았다면, 화를 펄펄 내며 이 소설들을 쓴 이를 당장 압송해 극형에 처하라는 명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1661년 제 18대 임금 현종과 중전 명성왕후 김 씨 사이에서 태어난 숙종, 이 순은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권을 소유한 전제 군주였다. 적장자 계승의 원칙으로 왕위가 계승되던 조선의 국왕 중심 중앙 집권 체제에서 중전의 배를 빌려 태어난 적자’, 이면서, 동시에 국왕의 모든 왕자들 중 첫 소생인 장자로 태어난 임금은 그가 유일했다. 실제로, 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군주들은 적자장자라는 두 조건 중 한 가지만을 충족했고 이 때문에 재위 기간 내내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심지어 15대 임금인 선조나 20대 영조의 경우에는, 두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해 평생을 정통성 콤플렉스와 열등감을 지닌 채 신하와 종친들을 견제하며 살아야 했다. , 조선왕조실록숙종실록편에는 숙종 임금과 유학자 송시열의 기 싸움 일화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숙종은 왕위에 올랐을 때 겨우 열네 살이었고, 68세의 송시열은 인조부터 효종, 현종, 숙종까지 무려 네 임금을 모신 노련하고 원숙한 정치가이자 유학자였으며, 또한 서인의 영수였다. 사씨남정기를 쓴 서포 김만중도 송시열을 필두로 하는 서인 진영에 속했는데, 14세의 어린 임금은 거물 유학자 송시열과 담판을 벌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 스물이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수렴첨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정치에 참여한 임금은 그가 유일하다. 그토록 영민했던 임금이, 인현왕후전에 나오는 것처럼 고작 여인 하나에 휘둘려 정사를 그르치고 충신들을 내쳤다는 것이 과연 사실일까? 다소 어폐가 있다. 아직 정치적 위상이 확고하지 않은 어린 임금은, 너무 기가 센신하들의 힘을 누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가 사용한 수단은 환국, 즉 잦은 정권 교체였다. 서인의 세력이 과도하게 성장하면 서인을 대거 숙청함과 동시에 축출해 남인의 힘을 키웠고, 또 남인의 세력이 과도하게 성장하면 서인들을 다시 정계에 복귀시켰다. 인현왕후와 장 희빈, 또는 숙빈 최씨까지 포함한 세 여인들은 절대선 또는 절대악이 아닌, 단순하고도 표면적인 정치의 희생양들이었다. 뼛속까지 차갑고도 비정했던, 권좌를 위해서라면 더 비정해질 수도 있었던 임금 숙종은 전각을 지어 하사하고, 임신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후궁으로 삼을 만큼 아꼈던, 15년간이나 그에게 부재했던 후계자까지 안겨 준 여인 장옥정을 남인의 몰락과 함께 미련 없이 곁에서 치워 버렸다. 그토록 화려했던 여인 장옥정의 짧은 사십 이 년 생은 정치적 뒷받침의 붕괴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내가 두 번째로 다루고자 하는 시사점은, ‘신분제속의 장옥정에 대해서이다. 당대 학자들의 기록과 몇몇 야사에서는, 그녀의 출신 성분을 간략히 아비는 역관 장 형이고, 어미는 노비 윤 씨이다. 본래 천인이 되어야 할 것을 장 형이 돈으로 속량하여 중인이 되었다. 윤 씨가 노비로 있던 집안의 주인인 남인 조사석과 내연 관계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옥정은 조사석과 종친인 동평군 이 항의 추천으로 자의대비전의 지밀 나인으로 입궁했다. 이후 승은을 입어 종 4품 숙원에 책봉되었다.로 요약하고 있다. 그런데, 인현왕후전사씨남정기를 읽으면서, 나는 이 두 작품이 장옥정의 콤플렉스인 신분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자에서는 장옥정의 신분에 대해 직접적으로 요악한 천인으로 언급하며, 후자에서는 그녀를 상징하는 인물인 교 씨가 부모 없이 자랐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강조한다. 명문가에서 태어난 인현왕후의 가문적 배경이 곧 현숙하고 자애로운 그녀의 성품으로 이어졌고, 반대로 출신에 상당한 마이너스적 요소를 지닌 장옥정은 욕심이 많고 천박한 여자라는 당시 지식인들의 생각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장옥정은 어쩌면, 대단한 야망을 지닌 여인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장옥정의 신분은 비록 천했으나, 조선에서 제일가는 거부 역관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궁 밖에서 꽤나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양반 사대부 앞에 고개를 숙이고, 같은 신분인 중인들 사이에서도 반쪽짜리 중인이라 놀림받을지언정 적어도 밥은 굶지 않을 수 있었고, 비단옷을 입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신분제가 그녀에게 지운 굴레였다. 미모 하나로 노비의 신분을 벗어던지고 역관의 첩이 된 어머니 윤 씨의 기구한 운명을 장옥정은 그대로 이어받아야 했다. 사대부 가문과 혼약을 맺을지언정 정실 부인은 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장옥정은, 더럽고 치사한 양반 사대부의 첩이 되기보다는 임금의 첩이 되기를 선택했다. 이를 위해 그녀는 제 모든 것을 걸고 궁녀가 되었고, 이는 그녀의 대단한 야심이 아니었다면 결코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자신을 둘러싼 불합리한 제도, 그리고 사회적 구조와의 정면 승부를 택했지만, 싸움에 싸움을 거듭할 때마다 그녀는 수없이 많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인현왕후전에서는 서인 진영의 대신들이 그녀를 비방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기근이 계속되고, 전염병이 도는 것은 국왕이 천하고 아름다운여자를 곁에 두어 하늘이 노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한다. 서인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일말의 정이 뚝 떨어지려고 한다. 여인 하나 때문에, 그것도 그 여인의 출신 때문에 하늘이 재앙을 내린다니, 이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신분 때문에 숙종의 모후인 명성왕후 김 씨에 의하여 한 번 궁 밖으로 쫓겨나 6년의 세월을 보내다 다시 돌아와 희빈이 되고, 중전이 되어 힘을 가진 이후에도 장옥정은 그러한 비방을 들어야 했다. 사씨남정기에서는 생략되어 있지만, 인현왕후전에서는 인현왕후가 장옥정에 대한 임금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서인 진영의 대신인 김찬국의 딸을 후궁으로 뽑아 궁에 들인 사건이 잠시 소개된다. 장옥정은 궁녀에서 시작해 어렵게 겨우 내명부의 말단 후궁인 종 4품 숙원이 되었고, 그로부터 몇 년이 흘러서야 겨우 정 2품 소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명문가 출신인 김찬국의 딸은 숙원을 거치지 않고 즉시 종 2품 숙의로 책봉되어 입궁한다. 숙의 김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종 1품 귀인이 된다. 갑절은 어린 여인을 웃전으로 모시고, 고개를 숙이면서 그녀가 느꼈을 모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이다. , 장옥정의 아이인 윤은 장차 다음 대의 왕이 될 세자였으며, 그녀 역시 세자의 모후였다. 정통성이 확보되지 않은, 불안한 왕권을 승계받게 될 왕자의 어머니로써 그녀가 느껴야 했을 불안감과 좌절감은 나로써는 감히 지레짐작하기 힘들 정도이다. 장옥정이 명문가 출신의 규수였고, 인현왕후가 신분이 천했다면. 어쩌면 두 여인의 운명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장옥정은 악녀가 될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인현왕후 역시 꾸며진 현숙함과 자애로움이라는 내숭으로 무장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인현왕후는 끝내 정쟁의 승리자가 되었지만 결코 남편의 사랑을 얻을 수 없었고, 신분제에 저항하고자 했던 장옥정은 끝내 그 신분제에 삶을 농락당했다. 표면적 평등이 실현된 사회에 살고 있는 21세기 현대인으로서, 송두리째 부정당했을 지도 모르는 그녀의 불꽃 같은 삶, 그리고 죽음에 강한 조의를 표한다.

세 번째는, 그녀의 죄에 대한 진실이다. 인현왕후전에서의 희빈 장 씨는 투기(질투)에 눈이 멀어 궁으로 무당을 불러들이고,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고사를 지낸다. 이로 인해 인현왕후는 억울한 죽음을 맞고, 이는 장 씨가 사약을 받는 데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조선왕조실록역시 장 씨의 사사 이유를 이와 유사하게 기록하고 있다. 사씨남정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욕심 많고 교활한 교 씨가 사 씨를 음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저주을 이용해 자작극을 벌인다. 실제 사료와의 차이점이라고는, 조선왕조실록에서의 장 씨의 죽음에 대한 묘사는 경진년(1701) 취선당에 신당을 두어 왕후를 저주한 일이 발각되어, 사사되었다.라고 기록된 것이 전부이며, 인현왕후전에서는 그녀가 죽음을 앞두고 임금에게 패악을 부리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몇몇 당대의 검증되지 않은 야사에서는 그녀가 사약을 받기 직전 세자를 보기를 청했다가 돌연 패악을 부리며 세자의 중요 부위를 잡아당겨 사내 구실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는 정도이다. 검증되지 않은 야사는 우선 제쳐 두기로 하고, 내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논지는 정말로 장옥정이 인현왕후를 저주했는가?’ 이다. 장옥정은 결코 아둔한여인이 아니었다. 이십 년간의 궁 생활은 그녀로 하여금 살아남는 법을 터득시켜 주었고, 그녀는 적어도 해서 이득이 될 일화가 될 일을 구분할 줄 아는 여인이었다. 희빈으로 강등당했을 당시의 그녀는 인현왕후의 심복이자 서인이 내세운 또 다른 여인인 숙빈 최 씨와 그녀가 낳은 아들 연잉군 이 금(후일 영조)의 등장으로 꽤나 입지가 좁아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옥정은 여전히 세자의 하나뿐인 생모였고, 남은 여생을 충분한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아갈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영악한 쪽에 가까웠던 그녀가 이성을 놓고 미신 따위에 의지해 터무니없는 행각을 벌여 자신의 죽음을 재촉했다는 사실에 나는 또 한 번 의아함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저주’, 그리고 주술’. 궁중 암투를 다룬 삼류 소설에서, 항상 등장하는 시나리오가 아닌가. 내가 아는 장옥정은, 이토록 진부한 여인이 아니었다. 이는 장옥정답지 않다. 그리하여 나는 또다시, 어쩌면 사실일 지도 모르는 조각들을 쫓아 가 보았다. 또 하나의 기록인 승정원일기에서는 임금이 직접 추국청을 열어 장 씨의 나인들을 문초하였는데, 모두 한결같이 천연두에 걸린 세자를 위해 기도한 것이라 변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세자 윤이 천연두에 걸렸던 사실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확인되며, 어쩌면 병중이던 인현왕후의 병이 옮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현왕후전에는, 윤이 천연두에 결렸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또한, 장옥정의 저주를 밀고한 이는 다름아닌 숙빈 최 씨였다. 사씨남정기에는 최 씨를 상징하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지만, 인현왕후전에서는 최 씨에 대한 이야기가 꽤나 자세하게 등장한다. 작품 속에서 최 씨는 인현왕후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사가에서부터 줄곧 그녀를 모셔 왔던 무수리로, 주인이 폐출된 이후에도 궁에 홀로 남아 매년 그녀의 생일상을 차리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녀는 숙종에 의해 이러한 행위를 들키지만, 충성스러운 최 씨의 마음씨에 반한 숙종은 그녀에게 승은을 내리고, 곧이어 왕자 연잉군을 낳자 숙빈으로 삼는다. 실제로도 숙빈 최 씨는 인현왕후가 아버지인 여흥부원군 민유중의 사가에서 머물 당시부터 그녀를 모셔 온 몸종이었으며, 인현왕후를 모시고자 궁의 노비인 무수리로써 함께 입궁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서인 세력과 가까울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고, 나는 이러한 서인의 영향력이 숙종과 그녀의 소설 같은만남을 철저히 계획했으리라 판단한다. 무수리는 궁녀와 달리 궁에서 상주하지 않고 출퇴근을 했다. 마땅히 출궁해야 할 시각에 무수리 최 씨는 궁에 남아 있었고, 넓디 넓은 궁 안에서 우연히임금의 눈에 들었다. 정말 우연히그 시간에 그녀가 출궁을 하지 않았고, ‘우연히임금이 밤 산책을 하는 길목의 전각에서, 인현왕후의 생일상을 차리는 모습이 우연히목격되었을 확률이 높을까, 이 모든 우연이 철저히 계산되었을 확률이 높을까? 나는 후자라고 본다. ‘장 희빈 저주 사건으로 알려진 무고의 옥도 이와 비슷한 성질의 것이었다. 물론 정말 옥정이 투기와 중전 자리에 눈이 멀었고, 그로 인해 인현왕후를 저주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숙빈이 정말 우연히왕의 눈에 띄어 승은을 입고, 왕자를 낳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는 내가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옥정은 살 수 있었다. 그녀는 세자의 생모였고, 남인을 비롯한 온건파 서인들까지도 그녀의 죽음을 반대했었다. 그러나 성질 급한 임금은 단 하룻밤 만에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을 명령하는 비망기를 내렸고, 그녀의 오라비인 장희재는 극형에 처해 버렸다. 이미 결론은 정해진 듯, 임금의 이상할 정도로 빠른 처결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장옥정의 죽음이었다. 제 아이의 아버지였고, 한때 사랑했던, 끝가지 저를 지켜 주리라 믿었을 남자의 손에 죽음을 맞을 때, ‘여인장옥정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나의 의심과 궁금증에서 시작된 글이, 어느덧 막을 내려 간다. 사실의 판단은 모두의 몫이다. 그녀의 삶을 다룬 드라마를 볼 때마다, 인현왕후전, 그리고 사씨남정기를 읽을 때마다, 또는 다른 책들을 볼 때마다 서로 다른 얼굴을 한 장옥정이 나에게로 말을 걸어 왔다. 내가 만난 장 희빈은, 아니 인간 장옥정, 요부도, 악녀도 아닌 한 남자의 사랑을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당당하고 아름다운 여인이었으며, 한 아이를 사랑한 어머니였고, 운명과 한계에 저항한 자유주의자였으며, 정쟁의 희생양이었다. 인현왕후전사씨남정기에서 본 것처럼, 나는 승자가 기록한 요부 장 희빈이 아닌, 인간 장옥정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삶을 농락했던 신분제가 폐지된 지 약 백여 년이 흐른 이래, 나는 한 때 그녀가 살아 숨 쉬었을 이 땅에 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극심한 경제적 격차, 학연 · 지연 · 혈연에 따른 선입견과 편견에 신음하고 있다. 쉽게 변하는 것도 사람이고, 변하지 않는 것도 사람이라는 말이 과연 정말인가 보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데, 어떻게 세상이 바뀔 수 있을까. 장옥정처럼, 선입견과 편견, 그리고 승자의 기록에 의해 매도당하는 이가 없기를 바라 본다. 부디, 먼 곳에서는 그녀가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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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수문록>, <승정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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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희님의 댓글

안태희

장희빈 이라는 인물을 알고는 있었지만 자세하게 알아본 적은 없었는데, 이 글 덕분에 유익한 지식 얻어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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