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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아이의 아들은 '저주받은 아이'?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 연극 대본에 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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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쇄매체 강현우 비평단 Posted18-01-23 19:52 View186회 Comments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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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네이버 포스트 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4858414&memberNo=6370530 >

 

마법의 시대가 열렸다!

 1997년 6월 30일, J.K 롤링의 손 끝에서 마법의 시대가 열렸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로 시작한 전설의 마법사 '해리포터'의 일대기는 전 세계의 독자들을 휘어잡았다. 불행의 끝에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써내린 J.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는 시작부터 1억 700만 권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그 인기에 힘입어 2001년 영화로 제작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대장정은 영국 서머 타임 기준 2007년 7월 21일, 0시 1분에 전 세계에서 동시에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이 발매됨으로 인해 끝을 내렸다.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은 발매되기도 전, 발매된다는 소식만으로도 아마존 닷컴이나 반스 앤 노블에서 선 주문만으로 베스트 셀러에 오르는 등 마법의 힘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영화 또한 2011년,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가 성공리에 상영되는 것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센세이션한 마법 소설인 <해리포터> 시리즈는 막을 내린 이후에도 수많은 팬 층을 거느리며 그 힘을 보여주었다. 해리포터는 여전히 대중 속에 살아 존재했고, J.K 롤링은 여전히 그들의 삶이 있으리라며 독자들과 다양한 소통을 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 2016년 7월 30일, 팬들의 소망을 담아 런던의 팰리스 극장에서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가 초연을 선보였다. J.K 롤링의 스토리 라인과 잭 손의 극작으로 탄생한 결과였다. 마법의 시대는 1997년 J.K 롤링에 의해 열렸었고, 또 2016년, 극작가 잭 손에 의해 다시 열리게 되었다.

 

소설도 아니고 갑자기 연극 대본?

 팬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와, 또 나왔다니!', '이렇게라도 해리포터의 어른 시절을 볼 수 있는 건 기쁜 일이야!', '그런데 갑자기 연극 대본?', '소설이랑 영화는?', '우리가 아는 그 해리포터의 얼굴은?' 과 같이 그들은 한 편으로는 기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매체로 해리포터의 뒷 이야기를 만난다는 데에 볼멘 소리를 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롤링의 장난스러우면서도 자세한 심리 묘사, 흔들리는 해리의 마음과 마법같은 배경을 놀랍게 묘사한 문체가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심리 묘사보다 대사가 가득한 연극 대본은 우리에게 익숙할 리가 없었다. 심지어 배경에 대한 설명도 자세하지 않고, 영화처럼 그 장면을 직접 볼 수도 없는 거라 우리에게 시각적인 흥미를 일으키지도 못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몇몇 팬들이 해리포터의 광팬임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 대본에는 손이 가지 않아 여지껏 읽지 않고 있는 것이다.

 J.K 롤링은 왜 그렇게까지 모험을 감수했을까? 해리포터를 사랑하는 전세계의 모든 팬들을 위해 그녀가 다시 한 번 펜을 잡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왜 연극이었고, 왜 연극 대본이었을까?

 

익숙함과 상상 사이의 시너지 효과

 연극은 영화와 완전히 다르다. 물론 모두들 쉽게 알고 있겠지만. 영화는 영상이다. 영상으로 감독이나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모든 걸 드러내 대중에게 선보인다. 대중은 자신이 상상했던 영상이 어떤 것이든, 영화에 담긴 영상으로 그 모든 묘사에 대한 상상이 종료된다. 즉, 감독이나 작가가 대중에게 '네가 느껴줬으면 좋겠어' 라고 생각한 모든 부분이 형상화되어 보인다는 것이다. 상상력이 영상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대중의 역할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영상을 보고 '아 이런 거구나' 깨닫기만 하면 된다.

 그동안 <해리포터> 시리즈는 J.K 롤링이 소설로 쓴 후 영화로 세상에 내놓아지는 게 마땅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롤링의 친절한 소설도, 흥미진진한 영상을 담은 영화도 대중에게 보여지지 않은 것이다. 무슨 의미일까? 

 아마 롤링과 극 작가 잭 손은 대중, 즉 독자에게 '상상력'이라는 어마어마한 놈을 기대한 것 같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우리에게 영화로 쉽게 다가왔고, 그 영화에 담긴 해리포터의 이미지와 '그 세계'의 놀라운 모습들이 대중에게 익숙해져있다. 그런 대중에게 익숙함 속에서 연극 대본에 담긴 서사를 상상해 내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필자도 <해리포터> 시리즈의 엄청난 팬으로서 연극 대본을 접할 때 한 사람 한 사람의 대사가 목소리로 상상되어 다가왔다. 말포이, 헤르미온느, 론, 해리포터, 지니의 목소리가 상상으로 실현돼 머릿 속에 떠오르자 내가 영화를 보고 있지 않음에도 내 상상 속 영상이 자연스레 상영되는 기분이었다.

 롤링과 잭 손은 아마 독자에게 이런 걸 원했을 것이다. 상상, 독자가 여기는 익숙함과 상상 사이의 시너지 효과. 그 효과로 인한 영화보다 더 '판타지스러운', 영상에도 차마 못 담을 개개인의 상상력! 그 상상력 안에서 불가능한 마법은 없고, 또 그것이 해리포터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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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네이버 포스트 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45545&memberNo=1972495>;

 

전설의 살아남은 아이

 <해리포터> 시리즈를 즐겨 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해리포터는 마법 세계의 유명한 아이다. 어려서부터 명성으로 마법 세계의 모든 이들이 알고 있었으며, <해리포터>의 가장 큰 악인 볼드모트에게조차 가장 큰 위협이 되던 존재였다. 그런 해리포터는 전설의 '살아남은 아이'였고, 매 편에서 그가 헤쳐 나가는 역경과 고난은 영웅이라 하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 연극 대본 뿐 아니라 다른 편에서는 말포이나 론조차 해리포터에게 질투를 하기도 했다. '너는 어차피 유명하니까!' 라는 식으로 비꼬는 친구들의 말을 많이 듣던 해리는 말 그대로 전설이었다.

 그는 태어나서 얼마 안 돼 강력한 어둠의 마법사를 물리쳤으며, 영광의 상처같은 번개 모양의 흉터를 지니고 있었다. 1학년 때 비행 실력으로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의 수색꾼이 되거나, 몇 차례에 걸쳐 다양한 모습을 한 볼드모트 (퀴렐 교수, 일기장, 톰 리들, 호크룩스 등) 를 무찔러내는 그는 살아남은 아이라는 타이틀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대단한 인물이었다. 마법 세계는 모두 그를 동경했고, 그는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다. 호그와트의 역사에 길이 남을 교장 덤블도어도 해리포터는 끝까지 사랑했으며, 볼드모트같은 훌륭한 마법 실력을 비슷하게 지니기까지 한 해리였다. 그 전설을 잇는 다른 전설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살아남은 아이의 아들은 '저주받은 아이'?

 제목부터가 다르지 않나. 해리포터는 살아남은 아이다. 'supposed to be a star.' 별이 될 운명을 지닌 아이였다. 그런 해리포터의 아들은 저주받은 아이라니, 독자들은 더 당황했다. 더군다나 그 아들이 배정받은 기숙사는 그리핀도르도, 후플푸프도, 레번클로도 아닌 슬리데린이었다. 해리포터의 아들이 슬리데린이라니! 그 용맹함이 그리핀도르의 후손 같았던 해리포터와 달리!

 극 중 알버스 세베루스 포터 (이하 알버스 포터, 해리포터 아들) 는 이런 사람들의 시선에 힘들어 한다. 점점 삐뚤어지고, 심지어는 아빠를 증오하기까지에 이른다. 알버스 포터는 해리에게 '내가 아빠 아들이고 싶어서 이런 게 아니잖아요, 난 아무 것도 아니라고요!' 라며 본인의 행실을 더더욱 망가뜨리기까지 한다.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우러러보는 포터 집안에, 본인은 가장 누가 되는 포터라고 생각하는 알버스. 독자들은 그를 보며 당황하고, 의아해한다. 왜 살아남은 아이의 아들이 저주받은 아이여야만 했을까?

 왜냐하면, 아이는 결국 아이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았든, 저주받았든, 아이는 그냥 아이였다. 해리포터는 슬리데린에 가기 싫어한 그리핀도르였고, 알버스는 슬리데린을 두려워한 슬리데린이었다. 전설이든 무엇이든 아이는 그냥 아이고, 알버스는 그렇기 때문에 포터 가문에서도 마법 세계에서도, 호그와트에서도 '아빠처럼 위대하진 않더라도 충분히 사랑받아 마땅한 아이'여야 했다. 그래서 알버스는 슬리데린이었고, 저주받은 아이였으며, 말포이 가문의 (볼드모트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다분한) 스콜피우스와 친구였다. 그래도 알버스는 훌륭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시간을 돌려 볼드모트에게 희생된 이들을 살리려고 하고, 시간이 힘을 빌려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한 맟나가지로 '용감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왜 굳이 연극 대본이어야 했을까. 왜 굳이 저주받은 아이여야 했을까.

 살아남았으면 어떻고, 저주받았으면 어떤가. 영화면 어떻고, 또 연극이면 어떤가. 

 그들의 이야기는 끝까지 남아 마법 세계에 머무를 것이고, 우리는 그들의 세계를 계속 꿈꾸며 '분명 어딘가에 그들이 존재할 거야' 라고 믿는 수밖에 없다. 해리포터는 영웅이었고, 그의 아들은 저주 받았다. 그러나 그의 아들도 용감했고, 포터 가문은 또 다시 세계를 구했다. 가장 악하고도 약한 존재 '볼드모트'에 맞서.

 <해리포터> 시리즈의 격렬한 팬이라면, 그들을 다시 만나 마법 세계에서 허우적대고 싶다면 부디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를 거부감없이 읽어 봤으면 한다. 그들의 매혹적인 시간 이야기에, 시간을 거슬러 싸우는 그들의 용기에 헤어나올 수 없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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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출처]
 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4858414&memberNo=637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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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후님의 댓글

이지후

저도 해리포터의 광팬이라 벌써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들을 영문으로 읽었는데요, 물론 반가운 책이었고 책 나름의 의미도 가지고 있었지만 시간 여행과 관련된 내용이 다소 복잡한 전개를 만들어 냈고 너무나 많은 내용을 책 한권에 소화 시키려다 보니 무리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은뒤 다시금 그 책을 피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After all this time? Al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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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담원님의 댓글

김담원

해리포터시리즈를다봤음에도 불구하고 해리포터를자주보는 해리포터팬입니다. 아직 해리포터와저주받은아이는 읽어보지않았는데요 쓰신 그글만보고도 저주받은아이편을읽고싶은마음이생기는 그런 글인거같습니다. 좋은글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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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다연님의 댓글

강다연

헤리포터의 새 이야기가 평소와는 다른 극본형식이라 많이 실망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시도를 안하고 있었는데 책에 대해 얘기해주셔서 한번 읽어보고싶게 만들어주는 글 인것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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