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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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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종희 기자 Posted15-03-28 22:43 Comments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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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일 민족과 여성 역사관 취재기사(3)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생 동안 각고의 노력을 바친 분이 계신다. 바로 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의 김문숙 회장님이시다. 여성운동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많은 활동을 진행하셨고, 올해 만 87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활동 중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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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김문숙 회장님.

(출처: http://blog.naver.com/dragon48?Redirect=Log&logNo=120102514872 )

 

김문숙 회장님은 유복한 집안의 장녀로 어릴 때부터 생활 전반에의 어려움은 몰랐다. 해방 전 해, 즉 위안부 사건이 벌어질 즈음에 경북여고를 졸업했다. 학교에서 일본 군대 간호원으로 지원하라는 강요를 피하기 위해 교원자격증을 따고 영천국민학교에서 교사로 생활했다. 이때  일본인 교사와의 차별에 대한 반발심으로 한국인 교사들끼리 모여 한글로 수필을 쓰는 등 문학활동을 하다가 밀고로 인해 일본 헌병대로 잡혀가기도 했다. 집안의 재물을 통해 석방되고,  해방 후 9월에는 이화대학 약학과를 가게 되었다. 하지만 공부를 하지 않는 학교의 분위기와 학비를 보내주시는 어머니에 대한 죄송함으로 중등교원양성소 지리과를 통해 진주여고 선생님이 되었다. 이때 서울대학교 학생이던 남편분과 결혼하게 되었다. 하지만 경찰이 학생운동을 한 남편이 없자 시부모님을 잡아가버린 후 그분들이 언제 어디서 돌아가셨는지 찾을 수도 없게 된 사건 이후로 의기소침해진 남편과 자신의 생계를 위해 관광회사를 시작하게 된다. 관광회사 사장으로서 세계일주도 11번이나 했다. 그러다가 여성단체를 만들었고, 1986년 부산에서 여성의 전화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여성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1985년 서울의 여성의 전화를 본떠 시작한 이 사업은 폭력남편을 고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전화접수가 들어오면 이혼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거나, 이혼을 시키고 남편에게서 위자료 얼마를 받아주기도 하였다. 자신의 집에서 쉼터도 제공했다. 성폭력상담소를 운영하면서 성폭력을 당한 아이들을 구제해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일본의 기생관광이 너무 심각해 기생관광반대운동을 하러 공항에 갔다가 일본인들로부터 일본에서 은폐한 위안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이다. '너희가 전쟁 때 몸 팔러 다닌 여자들이 얼마든지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가 돈을 많이 주잖아'

 

1990년 위안부 신고 전화를 받으면서 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활동도 시작했다. 1991년 이귀분 할머니를 시작으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찾아냈다. 주변의 신고를 통해 찾아낸 할머니들에게 얼마의 돈도 지원했다. 그 중 하순녀 할머니는 꽃신 같은 신을 세 개, 네 개나 사 놓고, 목돈으로는 장롱을 사는 등 위안부가 없었다면 누릴 수 있는 평범한 생활을 꿈꾸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1992년부터 일본에 대해 관부 재판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것이 시모노세키 재판인데, 할머니들을 비행기로 일본까지 모셔서, 6년 동안 23번에 달하는 재판을 수행한 것이다. 비행기 값만 천 만원이 들었다. 이같은 재판을 여러 건 했음에도 승소한 것은 이 관부 재판 뿐이다. 그 후에 이귀분 할머니와 김문숙 회장님은 일본 국회에 방문해 당시의 무라카미 수상을 만나 문제를 제기했더니 수상이 90도 인사를 하고 사과를 하면서 국민기금을 만들게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사과와 돈을 배상받고자 했던 위안부 할머님들과 김문숙 회장님은 국민기금반대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민족과 여성 역사관은 올해로 10년째가 되어간다. 이 전시관을 만든 이유는 일반 국민들의 역사인식이 잘못되어 있어서라고 한다. 대부분 위안부가 존재했고, 일본이 납치해서 못된 짓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국가가 조금씩 도와주니 되지 않았나 하는 안일한 인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잘 사는 사람들, 특히 2세 같은 경우에 식민지 역사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경우 등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모아놓은 자료와 책 등을 전시하고 그것을 통해 역사를 가르쳐야 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 외에도 독거노인들을 돕는 활동도 하시는 등, 평생 인권운동가로서 여성문제 해결에 투신하신 분이다.

 

김문숙 회장님은 이처럼 많은 시간과 노력을 여성문제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투자하셨다. 우리의 입장에서 국민들을 대신하여 이 모든 일을 감당한 셈이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때까지 든 자금의 많은 부분은 사비로 담당하셨으나 현재는 역사관 운영비가 모자랄 정도이다. 어떻게 보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개인이 대신하느라 많은 부분을 희생한 셈이다. 그래서 이제는 개인의 희생을 독려하지 말고 국가 차원에서 이런 문제에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김문숙 회장님의 이 훌륭한 삶을 그대로 본받지는 못하겠지만 청소년 차원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더 심각하게 알아보고 해결을 위해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성자: 정종희 기자(jjhjjh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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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정종희 기자
E-mail : jjhjjh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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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기자단관리자님의 댓글

기자단관리자

기자님, 기사 잘 읽었습니다.
1) 분량 : 상 (25줄 이상) 2)사진(이미지파일) : 적합(출처기재,이미지 업로드) 3) 내용 : 상 (본인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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