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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영화 '1987'로 되돌아 보는 1987년 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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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치부 윤봄 기자 Posted18-01-31 11:26 View944회 Comments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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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스포츠 동아, 이해리 기자,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623132>

 

 

 1227일 개봉한 장준호 감독의 영화 ‘1987’128일 기준 관람객수가 7백만을 넘어섰다. 129분이라는 조금은 길다고 할 수도 있는 러닝 타임에 판타지도, 액션도, 스릴러도, 로맨스도 아닌 우리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흥행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등 연기력 구멍 없는 실력 있는 배우분들의 라인업도 영화의 흥행에 한 몫을 했고 긴 러닝 타임을 지루하지 않고 흡입력 있게 만들어주신 감독님과 그 외 연출의 힘도 있었지만 아마 무엇보다도 큰 작용을 한 것은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2016년 겨울, 촛불 집회를 통해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민주주의 의식의 향상과 더불어 과거 우리가 어떻게 이러한 민주주의를 이룩하게 되었는지를 보며 민주주의 의식을 다시 한 번 가슴에 되새기고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신 수 많은 분들를 추모하고 또 그에 대한 나름의 감사를 표하는 마음이 영화 관람을 통해 드러나는 것 같다. 그럼 지금부터 영화 ‘1987’에 배경이 되었던 역사적, 정치적 사건들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책상을 치니 하며 죽었다. () 박종철 군 고문 치사 사건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114,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 박종철군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전두환 정권의 무차별적인 탄압과 독재 그리고 이에 맞서는 국민들의 저항은 1980년 대 중·후반부터 이어져 오고 있었다.경찰은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관련 수배자인 박종운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그 후배인 박종철 군을 불법으로 체포했다. 그 후 경찰은 박종철 군에게 박종운의 소재를 물으면서 폭행과 물 고문, 전기 고문등을 가했고 결국 1987114일 박종철 군은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했다. 이 때 중앙일보 기자 신성호는 한 검찰 간부가 경찰, 큰일났어.”라고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에서 단서를 잡아 중앙 일보 신성호 기자가 박종철 군 사망관련 2단 기사를 그러자 다음날인 같은 달 15, 당시 치안 본부장 강민창은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 박종철 군 친구의 소재를 묻던 중 책상을 치니 갑자기 하며 쓰러져,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겼으나 12경 사망하였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한동안 군사정권의 궤변과 비도덕성을 조롱하는 유행어로 널리 사용된 탁치니 억의 기원이었다고 볼 수있다. 자신들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하여 저러한 발언들로 국민들을 조롱했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났다. 이어 동아일보는 당시 부검의 의사였던 오연상의 진술을 추가로 확보했는데 사건 당일 경찰의 요청으로 사건 현장을 제일 먼저 목격했던 중앙 대학교 병원 내과 전문의 오연상은 당시 박종철 군과 그 주변에 물이 흥건한 것을 제일 처음으로 목격했고 물 고문에 의한 사망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경찰은 14일 밤에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화장을 할 계획이었으나, 최환 부장검사는 사채 보존 명령을 내렸다. 사건 지휘는 그날 밤 당직이었던 안상수 검사가 맡았다. 이렇게 부검의의 증언과 언론 보도 등으로 의혹이 제기되자 결국 사건을 숨기기 힘들어진 정부는 사건 발생 5일 만인 119일 물 고문 사실을 공식 시인했다. 이후 수사경관 조한경과 강진규 2명을 구속했다. 정부는 내무부 장관 김종호와 치안 본부장 강민창의 전격 해임과 고문 근절 대책 수립 등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대학생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고() 박종철 군. 박종철 군 고문 치사 사건은 당시 대한민국 군사 정권의 어두운 시대를 대변하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박종철 군 고문치사와 은폐, 조작 사건은 전두환 정권의 정당성에 큰 타격을 주었고 정권 규탄 시위를 촉발했다. 이 사건은 19876월 항쟁에 아주 큰 영향을 주었으며 민주화운동의 촉매제 역할을 했고 볼 수 있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인 국민들의 6월 민주 항쟁

 

 6월 민주 항쟁은 1987610일부터 629일까지 대한민국 전국에서 일어난 반독재, 민주화 시위이다. 앞서 말했듯이 1980년대 중,후반부터 야당 정치인들을 비롯한 많은 학생들, 국민들 사이에서는 민주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 중 가장 큰 요구는 바로 대통령 직선제였다. 지금까지는 대통령을 국민이 아닌 대리인에 의한 간선제를 통해 뽑아왔는데 이제는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을 수 있도록 직선제로 개헌해야한다는 것이 가장 핵심이었다. 전두환 정부는 처음에는 이러한 국민들의 여론을 무시했지만, 국민들의 요구가 점점 거세지자 어쩔 수 없이 헌법 개정에 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8413일에 전두환 정부는 대통령 특별 담화를 통해 돌연 호헌 선언을 발표한다. 호헌이란 헌법을 지킨다는 뜻으로 이를 해석하자면 결국 전두환 정부는 국민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대통령 간선제를 계속 이어나나겠다는 뜻이다. 얼마 남지 않은 촉박한 임기와 국가 상황을 고려하였을 때 임기 내에 개헌이 불가하다는 이야기였다. 이후 6월달, 노태우가 제 13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 되었다.

국민들의 분노는 날이 갈수록 더해져만 갔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시민들은 호헌 철폐’, ‘독재 타도라는 두 가지 슬로건을 내세우며 시위에 들어갔다. 앞서 설명했던 박종철 군 고문 치사 사건과 이후 발생한 이한열 열사 사망 사건’(198769, 1천 여 명의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중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한열이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고,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그해 75일 뇌 손상으로 인한 심폐기능 정지로 사망한 사건)6월 민주 항쟁의 촉매제 역할을 해주었고 국민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1987610, 거의 전국 모든 곳에서 동시에 시위가 시작되었다. 20여일 동안 이어진 시위는 처음에는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발생했지만 이후 점차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여고생들을 도시락과 물을 전달하며 시위를 도왔고 택시 운전사 분들은 경적을 울리고 버스에 탄 시민들은 흰 손수건을 일제히 흔들었다. 특히 이 때 많은 직장인 분들이 시위에 참여했는데 이를 넥타이 부대라 부르기도 했다. 결국 전두환 정부는 국민들의 요구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고, 1987629일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盧泰愚) 민주정의당(약칭 민정당) 대표위원이 당시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여 발표한 시국 수습을 위한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헌법은 개정 되었고 국민들은 16년만에 대통령을 자신의 손으로 뽑을 수 있게 되었다.

 

-광장에서는 승리했지만, 제도권에서는 패배하다

 

 국민들은 승리를 자축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인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의 승리였다. 하지만 이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치권이 분열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6월 항쟁의 중심축을 했던 민주세력의 통합이 불발 되었고 1216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태우 후보가 당선 되었다.

 

 00년생인 필자는 역사 시간에 배운 지식 외에는 실제 상황이 어떠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1987’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운 내용, 그리고 부모님께 들은 내용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그 당시 상황과 국민들의 희생, 노력, 아픔들을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 저렇게 처참하게 죽어야 하는지, 왜 국민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답답하고 무섭고 화가 났던 것 같다. 그리고 수 많은 분들의 희생으로 얻은 이 민주주의가 정말로 소중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나였다면 어땠을까를 계속 생각하면서 영화에 집중했던 것 같다.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 노력하신 모든 분들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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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출처]
네이버 지식 백과: 6월 민주 항쟁,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60143&cid=47306&categoryId=47306
네이버 지식 백과: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95971&cid=46624&categoryId=46624
위키 백과: 6월 항쟁, https://ko.wikipedia.org/wiki/6%EC%9B%94_%ED%95%AD%EC%9F%81
[사진출처]
영기협 주최 ‘올해의 영화상’…‘1987’ 작품상·감독상 2관왕, 스포츠 동아, 이해리 기자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623132
정치부 윤봄 기자
E-mail : bomi2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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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연님의 댓글

백수연

최근 개봉한 1987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영화를 본 뒤 이렇게 기사를 읽으니 더 와닿는 것 같네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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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범님의 댓글

김근범

아직 영화는 보지 못하였지만 위의 기사내용을 보니 꼭 봐야겠다는 생각인드네요.
좋은 기사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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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님의 댓글

이주연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또 한번 느낄 수 있었는데, 윤봄 기자님의 기사를 읽고 한번 더 우리 역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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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빈님의 댓글

김다빈

영화를 보고 난 뒤로 당시 사회적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렇게 윤봄 기자님의 기사를 통해 더욱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수있어 좋네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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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서님의 댓글

김인서

영화를 보면서 그 당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매우 존경스러웠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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