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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 국제사회 첫 호소 김복동 할머니 별세

국제 사회에 처음 밝혔던 김복동 할머니...이제 생존자 2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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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아 기자 Posted19-01-31 19:38 Comments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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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ajunews.com/view/20190129101503027- 국제 사회 첫 호소 김복동 할머니 별세> 


 국제 사회에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공개했던 김복동 할머니가 28일 10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까지도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김복동 할머니는 "끝까지 싸워달라"는 유언을 남긴채 향년 9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14살 소녀는 1940년 일본군에 위안부로 납치 되었다. 중국과 홍콩, 싱가포르 등을 끌려다니며 고통과 눈물을 시간으로 8년을 보내고 고향에 돌아왔다.

그리고 1992년 고 김복동 할머니는 40년간 말하지 못했던 상처를 세상에 처음 꺼냈다. 우리 국제 사회에 처음 위안부 사실이 밝혀진 순간이었다. 이 해 8월에는 아시아 연대회의에서, 이듬해에는 세계 인권대회에서 위안부 피해를 증언했다. 또 김 할머니는 이 때부터 본격적인 여성 인권 운동의 길을 걸었다. 후에 1993년 빈 세계인권대회를 시작으로 세계를 돌며 위안부 피해사실을 호소하고 알렸다. 뿐만 아니라 유엔 인권위원회와 국제전범재판에 출석해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기도 했다.

 매주 수요일이면 수요집회로 일본대사관 앞을 찾아가 사과를 요구했다.

2016년 한일위안부합의를 두고서는 피해자들의 뜻을 반영하지 않았다며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였다. 이 날 김할머니는 "되지도 않는 돈 몇 푼 받으려고 싸우고 있는 건 아닙니다.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배상을 해야지."라고 외쳤다.


김 할머니는 본인의 아픔조차 나눔으로 베풀었다. 평생 모은 재산을 재일동포 등에게 기부하고 동일본 대지진 때에는 성금을 보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러며 김 할머니는 항상 희망을 갖고 살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몇 년간 암과 싸워 온 할머니는 이달 초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할머니는 수십년간 바뀌지 않는 일본의 태도에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픈 것 같았다.

2018년 어버이날 할머니는 "이렇게 허송세월을 보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그것도 병마로. 굉장하게 아픈 병마가 있네요"라고 말했다.

암 투병 중에도 "화해치유재단 즉각 해산"을 위해 1인 시위를 벌였다. 병상에서도 정부에 간곡히 호소했다.(화해치유재단=박 정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를 한 뒤 문제를 종식시키는 조건으로 세운 협상에 따라 설립된 기관)


그리고 2019년 1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달라. 나를 대신해 재일조선 학교 아이들 지원도 끝까지 해 달라" 고 김복동 할머니는 유언을 남겼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할머니는 일본 정부를 향한 강한 분노와 당부의 말을 남겼다.

평생을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바라며 살았던 김복동 할머니는 결국 일본 사과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별세소식을 알린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페이스북에 추모 메시지 댓글 590여개가 달렸다. 누리꾼들은 부고 기사에도 김 할머니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면서 일본을 규탄하는 댓글을 달았다.

pouu****-"일본의 사죄를 받고 떠나셔야 하는데 그 한을 못 풀고 떠나시다니 안타깝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계속 사위를 하셔서 마음이 더 아프다."

h022****-"아베에게 고한다. 피해자 할머님들이 돌아가시길 기다린다면, 그분들이 세상을 모두 떠났을 때 진실이 덮어질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속죄하고 진실로 반성하라"

현재 정의연은 홈페이지에 온라인 추모관을 열고, 추모의 말을 남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각계 인사와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정의연은 다음달 1일 오전10시 30분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영결식을 연다고 밝혔다.

"나비가 되고 싶다"던 김복동 할머니. 시민들은 나비모양 쪽지에 추모글을 남기고 있다.



이제 살아 계신 위안부 피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피해자 할머니 분들이 한 분이라도 더 계실 때 우리는 쉬지 않고 일본 정부에 사과를 요청해야 하고 하루 빨리 진정한 사과를 받아내야한다.

청소년들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올바르고 예민한 가치관을 적립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훗날 사회를 이끌어 나갈 때까지 사과를 하지 않는 상황이 오게 되더라도 정확히 알고 올바르고 진실된 사과를 받아내야하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청소년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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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출처]
https://www.google.com/search?biw=1920&bih=962&tbm=isch&sa=1&ei=1ctSXPqdGc2uoATl76DYCA&q=%EA%B9%80%EB%B3%B5%EB%8F%99%ED%95%A0%EB%A8%B8%EB%8B%88+%EC%B6%94%EB%AA%A8&oq=%EA%B9%80%EB%B3%B5%EB%8F%99%ED%95%A0%EB%A8%B8%EB%8B%88+%EC%B6%94%EB%AA%A8&gs_l=img.3...2352.8883..9799...1.0..0.197.3868.0j27......0....1..gws-wiz-img.....0..0j0i24.-7bS41lhtlQ#imgrc=o-QDYBdFlzMh8M:&spf=1548930016498-데일리한국-김복동할머니 추모식
https://www.ajunews.com/view/20190129101503027-아주경제"김복동 할머니 별세
[사진출처]
https://www.ajunews.com/view/20190129101503027-아주경제"김복동 할머니 별세
사회부 조수아 기자
E-mail : appleshu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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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3'

유예원님의 댓글

유예원

평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께 관심이 많았는데 유익한 기사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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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국님의 댓글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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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경님의 댓글

김다경

매주 수요시위를 하고있고 가장 오래된 시위가 될정도로 많은 날을 보냈는데도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것이 화가납니다. 위안부 할머님들이 계시지 않을 때 받는 사과는 의미 없지 않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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