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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대단지 사건과 도시빈민

광주 대단지 사건의 가슴아픈 사실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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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부 조수현 기자 Posted17-12-25 23:43 View500회 Comments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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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대단지 사건을 아는가?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 년 계획과 함께 급격하게 성장하게 된 우리나라는 도시로의 인구집중현상을 겪게 됩니다. 이때 생겨난 것이 바로 이 광주 대단지 사건이다. 1971년 8월 10일 화요일, 현재의 경기도 성남고 구도심지역인 당시의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성남출장소에서 일어난 대규모 봉기를 이르는 사건으로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 시절, 서울 특별시의 무허가 빈민촌을 정리하면서 시작되었다. 위 계획의 목적은 일부 무허가 주택을 현지의 상태로 계량화해서 양성화하고 새로운 주거지를 만들어 옮기기 위한 것을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때 마련된 이전 지역이 현재의 성남시로 당시 10만명이 넘는 빈민층이 살 집을 준다는 말만 믿고 모두 열심히 이사를 갔다고 한다. 당시 청계천과 서울역 일대에 살던 빈민들은 다시는 서울에 오지 않겠다는 서약까지 쓰며 이주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재 이주를 한 땅은 십만명을 욱여 넣어 겨우 함께 살아갈만한 땅만 마련되어 있었고, 집도 제대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가구당 20~40평씩 땅바닥에 금만 그어놓은 허허벌판에 천막같은 집이 지어져 있었다고 한다. 구변 시설은 당연히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의 말을 빌려 설명하자면 산에다가 나무만 베어놓은 후 살라고 하는 바람에 장화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한다. 교통시설과 같은 경우도 자동차가 보급되기 이전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로 가는 버스 노선이 6대 밖에 없었으며 수도권의 전철이 운영되기 전의 시기로 서울특별시에 출근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고난과 역경의 과정이었다. 실제 그 곳은 단순히 순수한 주거 환경으로 구성된 것도 아니었다. 투기꾼들은 입주권을 가지고 장사를 해 전체 입주 가구의 30%가 불법으로 이사를 한 사람들이었고, 입주 비용은 이로 인해 계속해서 비싸져만 갔다. 일자리가 있는 서울로 갈 수 있는 방법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 곳에서 일할 수 있는 생계 및 생존 수단도 없었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기본적인 전화, 상하수도, 화장실과 같은 시설도 전체의 공급의 20%밖에 차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경기도청은 주민들에게 처음 약속한 가격의 4~8배가 되는 가격의 토지대금 납부 고지서를 발행했고, 별다른 대응도 없이 서민들의 딱한 사정은 묻혀만 갔다. 이후 이러한 상황을 직접 극복하자는 목적을 지키기 위해 “불하가격시정 대책위원회”를 설립하여 입주민들을 시작으로 시위가 일어나게 된 것이 광주 대도시 사건이다.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진압하기 위해 전투경찰을 700여 명 투입했지만, 분노한 시민들은 광주 대단지 전역을 초토화시키며 분쟁으로 이끌어 나갔으며 실재 주동자 등의 22명은 체포되어 형사 처분을 받았지만 이후 명예회복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내무부는 차관과 경기도지사를 현장으로 파견해 이주민들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한 것은 물론, 주민대표에게 사과를 하고 이주민들의 화를 달랬으며, 성남시의 승격과 함께 주민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할 것을 약속하며 3일만에 진압되었다. 이와 같은 도시빈민의 문제는 이후로도 계속되고 있으며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주거공간 및 생활 공간이 부족해지는 현상 등의 경우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한 우리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해결방안을 위한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행정의 방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에도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인구가 집중되는 현상이 끊이질 않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들은 계속해서 지역의 격차를 벌이고 도시 빈민의 문제를 가속화시킬 뿐 아니라 도시간의 격차로 인한 문화, 경제, 및 교육까지도 많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지역의 환경을 개선하고 중심 업무지구를 분산화 시키고 혹은 그 지역을 특화시켜 모두가 다양한 곳에서 거주하고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도 한 가지의 해결책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 최초의 도시 빈민과 관련된 사건을 잊지 말고 계속해서 노력하고 마음속으로 세길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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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조수현 기자
E-mail : karen58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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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연님의 댓글

강서연

광주대단지 사건은 처음 들어봤는데 이제라도 알게되서 다행입니다 현재에도 이런 문제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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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예린님의 댓글

윤예린

안녕하세요. 대한민국청소년의회 대학생 멘토단 윤예린입니다.

'광주 대단지 사건'을 저는 처음 들어봤는데, 경제, 사회,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 이 사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생전 처음 들어본다는 것에 조금은 부끄럽기도 합니다. 유럽의 대도시는 인구 수가 3만명이 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고 하는데, 그에 비해 서울은 면적 대비 인구 수가 너무 많아서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신도시라고 하여 상당히 발달된 서울 근교로 나가기도 하지만, 그 곳에서도 여전히 교통이나 편의시설이 부족하거나 불편한 상태입니다. 지하철이 없어 무조건 버스를 타야 하는데 버스 배차 간격이 말도 안되게 넓고 차의 승객이 꽉 찼다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아서 출근길에 몇십분이고 기다리기도 해야 되는 이 상황이 아마 그 때만큼이나 열악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렇게 시기가 상당히 많이 지난 이야기를 기사로써 다룬 다면 그 사건과 현재의 연결고리를 할 수 있는 내용이 추가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기사의 완성도를 위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한 번쯤은 이 이야기를 듣고 가슴 속에 깊이 새겨두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시의적절성과 내용의 흥미 면에서는 온전한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기사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서술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전체적인 기사의 중심 사례를 '광주 대단지 사건'으로 다루되 최근 일어난 사건과 연관지어 이야기 한다든지 현대의 부동산 문제를 서론에 언급하는 것이 더 좋은 구성이 될 것 같습니다.

신선한 주제를 선택하여서 좋은 글 써주었습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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